맞선 자리. 이 여자… 썰렁한 내 이야기를 잘도 받아 준다. 계속 웃으며 들어 주는 모습을 보니 내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애프터를 신청해도 바쁘다고만 한다. 그날 그 웃음은 뭐였지? 내가 괜찮았던 게 아니었나?(노총각 박 씨)
웃는 얼굴의 진실이 궁금했던 사람은 박 씨만이 아니다. 100년 전 프랑스 신경학자 뒤셴 드 불로뉴도 진정으로 기분 좋은 웃음과 그렇지 않은 웃음의 차이를 알고 싶었다. 그는 얼굴 여러 부위에 전기 자극을 가한 뒤 근육이 수축되는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각각의 얼굴근육이 표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분석했다. 연구 결과 큰광대근(광대뼈에서 입가 쪽으로 이어지는 근육)이 움직이며 나오는 웃음은 의지에 의한 웃음인 반면, 눈둘레근에서 나오는 웃음은 정말 달콤한 감정을 느껴야만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책은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얼굴 표정과 그 이면의 심리를 해부했다. 비언어 의사소통 전문가인 저자는 슬픔, 괴로움, 분노, 놀라움, 두려움, 역겨움 등 8가지 감정을 분석하고 얼굴 표정을 통해 이 감정들을 읽는 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표정을 만들어 내는 근육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바늘을 꽂고 전기 자극을 주는 실험도 강행했고, 세계 각국의 정신과 환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의미한 표정 3000개를 정리해 얼굴지도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얼굴의 움직임 해독법(Facial Action Coding System)을 만들었다. 책 중간 중간 저자가 자신의 딸 얼굴을 수천 장 사진으로 찍은 후 눈썹, 눈, 입 등을 잘라 합성해 미세 감정을 분석한 사진설명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표정의 보편성’도 설명한다. 보편적인 표정이 없으면 표정 해독이 불가능하기 때문. 저자는 외부와 완전 고립된 원주민 ‘포레족’과 미국 대학생에게 “이 사람이 표정을 짓기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무슨 일을 벌일지 말해 보시오”란 질문과 함께 여러 표정의 사진을 보여 준 결과 그 답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인간이 표정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왜 인간이 그토록 다양한 표정을 짓는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호랑이를 보고 짓는 두려움의 표정은 소리를 내지 않고도 집단에 경고를 보내는 생존 장치다. 실제 사건 사진을 사례로 들면서 표정의 본질이 ‘대인 혹은 집단 커뮤니케이션’과 관계 있음을 설명한다.
부록으로 얼굴 사진을 순간적으로 보고 그 표정이 담고 있는 감정을 기록하는 ‘표정 읽기 훈련법’도 첨부했다. 노총각 박 씨와 같은 경험이 있는 남녀들, 한번 시도해 보시길. 원제 ‘Emotions Revealed’(2003년).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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