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은 퀴즈가 아니다. 지식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고 싶어 한다. 왜 그러한지, 어떻게 해결할지를 묻는다. 암기한 지식에 머물면 천편일률이라는 평가만 되돌아온다.
사실 시대의 고민과 내가 겪고 사는 생활은 한 몸이다. 환경호르몬, 청년 실업, 출산율 저하 같은 문제를 교과서가 전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학과 공부를 삶의 맥락에서 되새김할 때 지식의 그물망도 촘촘해질 것이다.
공부에서 삶으로 넘나들자. 오랜 세월 인류는 철학이나 종교의 모습으로 삶을 성찰해 왔다. 우리도 가까이 있는 종교에서 오래된 지혜를 만나 보자.
이 책은 그중에서도 예수를 통해 시대와 만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너무나 위대한 사람이라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예수는 오히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결국 사형수로 삶을 마감한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빈부격차도 극심했고 게다가 로마 식민지 통치시대였다. 그러니 인류의 영혼에 큰 영향을 주었던 삶의 여정이 우리보다 평탄했을 리가 없을 터다.
무엇부터 살펴볼까. 우선 주체적으로 하느님을 이해한 예수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예수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른 최초의 유대인이다. 기존의 유대교는 율법을 중시하면서 정의롭고 엄격한 이미지의 하느님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너그러운 ‘하느님 아버지’는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과 자연을 따스하게 감싸는 존재이다. ‘창조적 재해석’ 능력이 위대한 예수의 바탕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체험과 주체성을 살리는 전략’에서도 매우 탁월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어 하느님을 ‘아버지’로, 스스로를 ‘자녀’로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병자를 고칠 때에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식의 주체적 치유 능력을 자극하였다. 주입식이 아닌 자기주도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예수의 표현법도 눈여겨보자.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법은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겨자씨나 누룩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알기 쉽게 풀어 주는 식이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맞춤형 교육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예수교가 세계 종교가 된 열쇠는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가치 때문이다.
예수는 로마의 앞잡이로 낙인찍힌 세리를 비롯해 심한 병자들, 더러운 여자들, 죄인들과 서슴없이 함께 밥을 먹었다. 평등이나 평화의 추상적 원칙을 ‘자신을 낮추어’ 몸소 실천했다. 이론과 실천의 일치야말로 감동과 설득력의 원천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 책은 예수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살아 있게’ 만든 안내서다. 역사의 눈으로 예수의 삶을 다시 보면 내 삶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학생들도 각자의 종교생활 속에서 시대를 고민하는 방법과 지혜를 깊이 성찰해 보길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 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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