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체구의 비구니가 가부좌를 한 광고대행사 제일기획 팀장들에게 “이곳에서만큼은 시간을 잊으세요”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느 때 같으면 한참 광고 기획안을 놓고 씨름할 시간. 그러나 이날만큼은 속세를 떠나 있었다.
제일기획은 50여 명의 팀장 전원을 대상으로 1박 2일의 ‘템플스테이(사찰 문화 체험)’를 마련했다. 광고 취급액 1조7000억 원으로 국내 1위이자 세계 18위의 ‘잘나가는’ 회사의 간부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법주사를 찾았을까.
○ 나를 찾는 여행
“자신의 장점 20가지를 써 보세요.”
행사 진행을 맡은 마가 스님의 말에 팀장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단점을 쓰는 게 더 빠르겠네….” “10개만 쓰면 안 될까요.”
삼성전자 가전 광고를 담당하는 권윤기 팀장은 옆에서 누군가가 칭찬을 해 주고 나서야 “그런 게 내 장점이었네…”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직과 팀워크를 강조하는 보통 회사의 워크숍과 달리 이날의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였다.
‘나의 장점, 내 가족의 장점, 내가 미워하는 것, 내가 용서해야 할 것….’
마가 스님은 “방에 불을 환하게 밝히면 자연히 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듯 나를 바로 알고 바로 세워야 내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조직에 영향력이 큰 리더는 특히 ‘나’를 바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동만 제일기획 사장은 “팀장쯤 되면 인생 중반을 넘는 나이가 되는 만큼 일상을 떠나 삶을 되돌아보는 ‘쉼표’를 주고자 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산사의 아침은 오전 3시에 시작된다. 세상이 아직 잠든 시간에 팀장들은 108배를 시작했다.
산사 체험의 마지막은 참석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나머지 동료에게 절을 받는 순서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귀한 사람이 귀한 행동을 하고 남도 귀히 여기지요.”
24시간의 ‘외출’을 마친 이들은 “3박 4일쯤 되면 좋겠다”고 아쉬워하면서 피안(彼岸)에서 차안(此岸)으로 돌아갔다.
보은=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