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연구회는 다음 달 3, 4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동북아시아와 발해’를 주제로 한 제12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개국의 발해사 전공자 16명이 참여하는 이번 학술대회의 초점은 역시 발해의 정체성에 모아진다.
미리 배포된 발표문에 따르면 중국 측 학자들은 발해가 고대 숙신과 읍루를 계승한 종족명인 말갈족이 세운 국가로 당에 복속된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한다.
최근 동북공정의 연구 성과로 출간된 ‘발해국사’의 주저자인 웨이궈중(魏國忠) 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원은 발표문에서 말갈은 발해를 건국한 중심종족명인 동시에 초기 국명이라는 주장을 거듭했다. 그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당나라의 발해군왕 책봉을 받아들인 후 말갈 호칭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 불렀다’는 신당서 등의 역사 기록을 중심으로 이런 주장을 펼쳤다.
왕위랑(王禹浪) 중국 다롄(大連)대 교수는 역시 8세기 중국와 일본의 비문에 ‘말갈국’이라는 기록이 등장하는 고고학 자료에 초점을 맞춰 발해의 초기 국호가 진국(震國)이 아니라 말갈이었다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고구려연구회 회장인 한규철 경성대 교수는 “말갈은 고구려에서 수도였던 평양성 사람을 국인(國人)으로 불렀던 것에 대칭해 고구려 변방주민을 부르던 비칭”이라며 발해를 고구려 유민이 세운 국가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말갈이라는 호칭이 중국사서에 6세기 무렵 갑자기 등장하는 데다 그 영역이 숙신과 읍루의 거주지였던 쑹화(松花) 강 중하류를 넘어 만주 전역과 한반도 북부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중국사서에 등장하는 7개 말갈족은 발해를 건국한 6개의 고구려말갈과 1개의 흑수말갈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시이 마사토시(石井正敏) 일본 주오대 교수는 11세기 초 문학작품인 겐지모노가다리(源氏物語)에 나오는 ‘고려인(高麗人)’이 고도의 중국문화를 체현한 발해인을 지칭할 만큼 고구려 계승국으로 발해인에 대한 인식이 일본 문화에 뚜렷이 각인됐다는 점을 소개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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