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원래 재미를 주는 거짓말”

  • 입력 2006년 11월 3일 03시 00분


소설에 자정의 시간이 오는가?

젊은 작가 박형서(34·사진) 씨의 새 단편소설집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박 씨는 ‘독특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으로 호평받아 온 젊은 작가. 새 소설집에서 그는 특유의 상상력에 포복절도할 유머를 섞어 놓았다.

이를테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 형식의 단편소설을 썼다. 주요섭의 유명한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실은 사랑손님과 딸 옥희의 성애를 교묘하게 다뤘다는 주장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 유명한 저서의 부분 부분을 이어 모은 실험도 주목할 만하거니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 흥미롭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독자들이 메시지를 찾아가면서 읽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독자는 무엇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더욱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재미요.”

이야기꾼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는, 소설이 출발했던 때의 모습을 박 씨는 새롭게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설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거짓말’이 아니었던가.

사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에서 아버지뻘 되는 사랑손님과 소녀 옥희의 원조교제로 얘기를 끌어가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랑손님이 자신의 달걀을 옥희에게 주는 행위’를 ‘사랑손님이 옥희에게 정액을 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부분에 이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를 잡게 된다.

“저는요, 작가는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요. 소설을 보고 뭘 의미할까, 뭘 상징할까 생각하는 걸 말리지는 않겠지만,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를 쓴다는 거예요.”

또 다른 단편 ‘논쟁의 기술’은 말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소설. ‘유리한 주제의 선정’ ‘은근히 겁주기’ ‘상대가 모르는 예를 들기’ 등 실전에 도움 되는 기술을 소제목으로 나열하고 부합하는 사례들을 유쾌하게 늘어놓는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논쟁이 벌어지잖아요. 억지도 말만 잘하면 성립되고. 그런 모습을 비꼰 것일 수도 있겠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진 마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제 바람이 이뤄지는 것이죠.”

소설에 자정의 시간이 오는가에 대한 그의 답변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자정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새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순도 높은 재미로 가득 찬 소설 쓰기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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