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서사는 오랜만이다. 두 권 합쳐 1000쪽, 원고지로 4000장에 이르는 장편소설.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산 자와 죽은 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을 다룬 에밀 졸라의 대작 ‘제르미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며 ‘2005년의 제르미날’이라는 평을 받았다.
스토리가 탄탄하다. 프랑스 동부의 소도시 로셀의 강물이 범람하면서 플라스틱필름 제조공장이 물에 잠긴다. 노동자들은 기계가 고장날까 봐 밖에 옮겨 놓으려다 고립되지만, 주인공 루디와 작업반장 로르캥의 노력으로 기계를 안전하게 옮기는 데 성공한다. ‘밥줄’인 공장 기계를 목숨처럼 여기는 노동자들의 처절함이 만져지는 대목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문제는 2년 뒤다. 그룹 회장이 구조조정이라는 폭탄선언을 한 것. 공장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사장 포르마가 선택한 것은 대량 해고다. 고령노동자와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해고를 진행하면서 포르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노동자들에게 납득시키려 애쓴다. 그러던 중 그룹 회장은 사장도 모르게 공장을 미국계 회사에 매각해 버리고, 공장은 아예 폐쇄 절차에 들어간다. 노조 내 강경파와 온건파 간 갈등, 강경파의 대규모 시위 등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영화감독 출신 작가답게 영화를 연상시키는 순발력 있는 장면 전환, 속도감 있는 문체, 대화 위주의 전개로 소설은 놀랍도록 빠르게 읽힌다.
개인의 내면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치중해 온 최근 소설의 경향을 비추어 보면,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산 자와 죽은 자’는 희귀하다. 노동소설 하면 떠오르는 거칠고 격렬한 감정 묘사가 아니라 섬세하고 세련되게, 때로는 냉정하게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게 돋보인다.
대부분의 독자가 작품에 대해 갖게 될 선입견은 노동문제가 요즘 세상에 유효할까라는 의문. 그러나 이 책은 소설 속 노동자들이 평범한 우리 모두의 모습과, 그들의 일터인 공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줌으로써 그런 우려를 깨끗하게 털어낸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미움도, 슬픔도, 그리고 사랑도 있다는 것을 소설은 스케일 큰 이야기를 통해 입증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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