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째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도공의 작품이 1억 원에 팔렸다.
'고려청자의 고장'인 전남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에서 민간 가마인 '도강요'를 운영하고 있는 윤도현(63) 씨는 최근 충북 청주의 60대 사업가에게 1억 원을 받고 자신이 만든 청자를 판매했다.
수 백 년 된 청자 골동품이 수 억 원에 팔린 경우는 종종 있어도 현대 청자작품이 억대에 거래되기는 처음이다.
이 청자는 높이 100cm, 둘레 320cm, 무게 300㎏의 '청자상감당초문호'(靑磁象嵌唐草文壺).
이런 청자는 그동안 국내에서 제작된 사례가 없다. 1977년 처음 고려청자 재현에 성공한 강진군 고려청자사업소도 높이 90㎝ 정도의 청자를 만든 적은 있지만 1m가 넘는 작품을 생산하지 못했다.
이 청자는 표면에 동(銅)으로 만든 색소로 목련 꽃 모양을 양각으로 새겨 넣고 전통 상감청자 기법을 사용해 작품의 윗부분과 아래에 학과 국화무늬를 장식했다.
상감청자는 겉 표면에 무늬를 칼로 음각하고 파여진 곳에 흰 색깔이나 붉은 색깔의 흙을 붓으로 덮어 바른 뒤 그 위에 유약을 씌워서 구워낸다.
윤 씨의 작품은 완만하게 휘어진 곡선이 아름답고 청자의 은은한 비색이 묻어나는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을 구입한 60대 사업가는 지난달 개최된 청자문화제 기간에 도강요에 전시된 작품의 크기와 곡선, 색상에 반해 구매의사를 밝혔고 즉석에서 1억 원에 계약했다.
윤 씨는 5개월의 제작기간을 거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흙으로 빚은 대형 청자는 1300도 이상의 열에서 굽는 과정에서 녹아내리는 등 실패할 확률이 높아 불 조절이 어려운 장작가마 대신 가스가마로 구웠다.
구운 자기를 그늘에서 작품을 건조시키는 데만 70일이 소요됐다.
대작의 경우 건조과정에서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형태가 비틀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대형 물레 위에 작품을 얹고 수시로 위치를 바꿔주는 등 정성을 쏟았다.
윤 씨는 작품을 전달하기 위해 나무판자로 틀을 짜고 위에 한지를 덧붙인 높이 1.3m의 포장상자를 특별히 만들어 전달했다.
윤 씨는 "판매가 1억 원은 높아진 강진청자의 위상을 상징하는 가격"이라며 "남이 하지 않는 일에 뛰어 들어 성공했다는 데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윤 씨는 27년 전에는 직업이 약사였다.
조선대 약대를 졸업한 뒤 고향인 강진군 칠량면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청자의 매력에 푹 빠졌다.
'고려청자는 천년이 지나도 어떻게 그런 색깔이 날까'라는 호기심에 고려청자 재현에 매달리던 몇 사람을 찾아다니며 어깨 너머로 청자를 빚는 것을 배웠다.
"처음 청자를 만드는데 점토의 감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나만의 청자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약국을 접고 도공의 길로 들어섰지요."
돈벌이가 좋고 지역에서 유지로 대접받는 약사 일을 집어치우자 주위에선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했다.
그래도 그는 흙을 만지는 게 좋았다. 그래서 1996년 칠량면에서 강진청자의 발상지인 대구면으로 이사를 한 뒤 몇몇 사람과 함께 민간요를 설립했다.
윤 씨는 "당시 중소기업청으로부터 19억 원을 대출받아 각종 설비를 들어놓았는데 외환위기 때 자금압박이 심해지면서 많은 채무를 졌다"며 "청자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판매가 늘어 올해서야 그 빚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그동안 상감청자의 비색 재현에 심혈을 기울여 온 공로로 지난해 말 사단법인 대한신문화예술교류회에서 청자부문 '대한명인'으로 추대됐다.
강진=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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