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시의 폭락(1929년 10월 24일)으로 대공황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뉴욕 근현대미술관(MoMA·모마)’이 문을 열었다. 11월 7일이었다.
애비 록펠러, 릴리 블리스, 메리 설리번 등 세 명의 여성 컬렉터가 모마 설립에 큰 역할을 했다. 모두 부호들의 부인.
당시 미국에는 근현대미술관이 없어 분위기는 조성돼 있었다. 유럽 미술에 밝았던 화가 아서 데이비스는 미술관 설립을 위해 좋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들을 설득했고, 결국 세 여성 컬렉터가 의기투합했다.
‘석유왕’ 존 록펠러의 부인 애비의 공이 특히 컸다. 록펠러 가문은 용지를 비롯해 미술관 건립과 유지에도 거액을 내놨다.
록펠러 가문은 지금까지 모마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5년 4월 애비의 아들 데이비드 록펠러(90)가 생일을 맞아 “사후에 1억 달러(약 1000억 원)를 모마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모마의 첫 관장은 큐레이터 앨프리드 바였다.
개관에 맞춰 27세의 바는 세잔, 고갱, 쇠라, 반 고흐 등 네 작가를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놓고 기념 전시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 실업자가 1300만 명에 달하는 경제대공황 시기에 5주 동안 5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바는 기증받은 회화 8점과 드로잉 1점으로 모마를 시작해 급속히 확장해 갔다.
현재 모마는 15만 점의 소장품과 2만2000점의 필름, 400만 개의 필름 스틸을 보유하고 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을 비롯해 잭슨 폴록, 에드워드 호퍼,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 등 서양 미술사의 보물이 가득하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유럽에서 근대 미술작품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에 미국 컬렉터들이 작품을 사들인 덕이었다.
2004년 9월 모마는 4년간의 증개축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는데, 소요된 비용의 82%를 록펠러 가문을 비롯한 순수 기부자들의 모금으로 충당했다. 나머지 일부는 자체 소장품을 해외 미술관에 빌려 주고 받는 대여료로 조달했다.
“이 미술관은 시간을 통해 움직이는 어뢰(魚雷)다. 머리는 영원히 앞서가는 현재에, 꼬리는 50∼100년 전의 과거에 있다.”(앨프리드 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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