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물다섯 살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사진) 씨. 젊은 지휘자 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그가 베토벤 5번, 7번 교향곡을 담은 데뷔 앨범(도이치 그라모폰)을 냈다. 베토벤 특유의 패기와 열정, 조화가 잘 이뤄진 연주라고 생각하고 음반 표지를 보니 연주단체는 낯선 ‘베네수엘라 시몬 볼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였다.
“베토벤 교향곡은 분노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연주를 계속해 전개부분을 거쳐 결론부에 다다르면 그의 음악은 희망을 들려줍니다. 온갖 범죄와 마약, 가정문제의 끔찍한 경험을 갖고 거리에 모인 아이들이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할 때 그들은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연주실황 DVD에 담긴 인터뷰 중).
베네수엘라 라라 주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두다멜 씨는 ‘시스티마’라고 불리는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키워졌다. 그는 17세 때 경제학자이며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로부터 지휘를 배웠다. 아브레우 박사는 30년 동안 ‘베네수엘라 음악교육재단’에서 음악을 통해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해 왔다.
베네수엘라 음악교육재단의 운영 원칙은 간단하다. 아이들이 음악학교 합주팀에서 연주하겠다고 동의하면 그들에게 학비, 야외활동비, 합동 레슨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아이들에게는 성인 오케스트라에서 쓰던 낡은 악기도 무상으로 주어진다. 재단 측은 “우리의 첫 번째 목적은 아이들을 전문연주자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범죄와 마약에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음악학교 교사인 레나르 아코스타 씨는 소매치기와 마약으로 9번이나 체포된 전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DVD 인터뷰에서 “처음엔 제게 악기를 맡기고도 도둑 맞지 않을 거라고 믿는 바보가 세상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하지만 나중에 그들이 내게 클라리넷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그냥 주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인구도, 국민소득도 우리나라의 절반밖에 안 되는 베네수엘라에는 120여 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60여 개의 어린이 오케스트라가 있다. 단원들의 90%는 빈민층 출신이다. 이를 통해 배출된 40여만 명의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 입상 후 유럽에 진출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신흥 클래식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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