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 저미는 탱고 ‘에비타’
‘에비타’의 첫 장면은 에바 페론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에바의 죽음을 애도하는 서민들은 슬픈 선율에 맞춰 상체와 상체를 맞대며 느릿느릿 움직인다. 마치 심장 박동을 나누려는 듯,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려는 듯….
‘에비타’의 탱고협력안무를 맡고 있는 조명희 땅고아르떼 단장은 “탱고는 아르헨티나 이민자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외로움을 달래려는 데서 출발한 만큼 가슴과 얼굴 등 상체를 밀착해서 추는 것이 특징”이라며 “탱고 동작을 배우의 걸음걸이에 변형시킨 첫 장면은 이런 탱고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포에버 탱고’ 등 탱고만을 보여 주기 위한 공연은 많지만 탱고의 맛을 드라마 안에서 제대로 녹여낸 뮤지컬로는 ‘에비타’가 손꼽힌다.
‘스텝이 엉켜도 다시 춤을 춰나가면 되는’ 탱고는 곧 삶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딛고 아르헨티나의 ‘국모’가 됐지만, 서른세 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에바의 강렬한 삶은 음울한 열정의 탱고와 잘 어우러진다.
춤 자체로서 탱고의 매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장면은 1막 중 에바가 성공을 꿈꾸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는 대목이다. 30명에 가까운 앙상블이 등장해 화려하고 동작이 큰 에세나리오 탱고(무대공연탱고)를 펼쳐 보인다.
탱고는 흔히 ‘다리 사이의 전쟁’이라고 표현될 만큼 다리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 장면에서는 아르헨티나 탱고만의 특징인 ‘간초와 볼레오’(다리를 돌리듯 휘감은 뒤 차올리는 동작)를 눈여겨보면 좋다. 남자와 여자의 네 다리가 순식간에 얽혔다 풀리고, 휘감고 차내면서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이 매력이다.
극 중간중간의 술집 장면이나 파티 장면에서는 흔히 ‘3분간의 로맨스’라고 불리는, 감정의 밀도가 높은 살롱 탱고(탱고바에서 추는 탱고)가 등장한다. 17일∼내년 1월 31일. LG아트센터. 3만∼9만 원. 02-501-7888
■ 화려한 플라멩코 ‘돈 주앙’
내한공연에 앞서 DVD로 먼저 ‘돈 주앙’ 속 춤을 살펴본 플라멩코 전문가 전미정 플라멩코월드 대표는 “전통 플라멩코부터 현대적인 팝스타일로 변형된 퓨전 플라멩코까지 수준급의 화려한 플라멩코가 등장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플라멩코의 세 가지 핵심 요소는 노래(칸테), 춤(바일레), 기타 연주(토케)다. 이번 공연에서는 4명으로 구성된 라틴 악단 ‘로스 아마고스’가 등장해 라이브로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플라멩코를 감상할 때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현란한 발동작과 ‘꽃잎이 떨어지는 듯한’ 손목 회전이다. 무용수들의 발구름은 열정적이면서도 소리가 경쾌해야 하는데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발구름 동작을 할 때 소리가 잘 울리도록 무대에 40cm 높이의 마루판(울림통)을 깐다. 1막 중 집시풍의 노래인 ‘산다는 것’에 맞춰 등장하는 플라멩코는 힘과 열정이 어우러진 ‘돈 주앙’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플라멩코는 흔히 정열적인 춤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동시에 플라멩코 노래에는 우리 판소리와 비슷하게 슬픔과 한도 서려 있다. 2막의 클라이맥스인 돈 주앙과 연적 라파엘의 결투 직전에 나오는 ‘슬픔에 잠긴 안달루시아’는 이런 플라멩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느리고 우아한 동작에서 시작한 무용수들의 군무는 점점 빨라지면서 절정에 오르며 비장하게 끝을 맺는다. 30일∼12월 1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4만∼15만 원. 02-501-1377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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