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호 교수의 미디어 월드]다시 ‘신문다움’을 생각한다

  • 입력 2006년 11월 8일 03시 00분


‘품질 제일주의’라는 말이 있다. 품질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 고객을 감동시켜야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어서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한 경영보고서의 생각은 다르다. 최고 품질의 추구가 최선이 아닐뿐더러 도리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기업의 ‘전환을 위한 청사진’이라는 제목이 달린 하버드 경영대 연구팀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아메리칸 프레스 인스티튜트(API)의 ‘뉴스페이퍼 넥스트’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개인컴퓨터 소매업 자동차 등 여러 시장에서 1등은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아님을 지적하며 신문 시장의 경쟁력에 대해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신문 산업이 직면한 무한 경쟁과 파괴적 변화의 시기에는 완벽한 품질보다 적절한 품질, 복잡한 제품보다 간단한 제품, 비싼 것보다 저렴한 것에 고객들이 더 감동한다고 분석했다.

좀 더 나은 뉴스를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자녀 교육에 매진하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스포츠에 열광하는 청소년이 원하는 전혀 다른, 기존 뉴스 개념을 넘어서는 뉴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층적이고 분석적인 고품질의 뉴스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보는 신문으로서는 파격적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기존 질서를 본질적으로 흔드는 이런 급격한 변화는 뉴스 비즈니스 시장에서 처음이 아니다. 18세기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뉴스의 수집과 발행이라는 단순 가내수공업적 사업에 논설 기능이 추가돼 신문이 여론의 전달자와 선도자로 자리매김되는 시기에도 그랬고, 19세기 고속인쇄기와 텔레그래프 등 새로운 기술과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결합으로 엘리트를 위한 정파적 신문이 객관주의를 표방하는 대중 매체로 교체되던 시기도 그랬다.

처음 경제 상업 정보에 국한되었던 뉴스가 정치 이슈를 다루게 됐을 때도, 신문사 내에 경영업무와 차별적으로 편집국이라는 기구가 만들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신문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시기다. 신문다움이라는 것이 고정적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신문 저널리즘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시 많은 것이 달라져야 된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안민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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