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간 건강하게 잘 버텨낸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서 그래요. 당시 우리집이 홀라당 망해서 아르바이트 겸 노래를 불렀고 우연찮게 '아침이슬'을 듣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끝부분이 좋아서 취입한 건데…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 알았겠어요."
그녀가 35주년을 기념한다. 데뷔 35주년 기념 앨범 '양희은 35' 발매와 다음 달 14,15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 콘서트도 갖는다. 1971년 9월 김민기의 작품 '아침이슬'로 데뷔한 그녀는 '작은연못'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등 통기타와 청바지로 대변되는 포크음악과 청년 저항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후 '하얀목련',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1980,90년대에는 서정성 깃든 음악으로 채워갔다.
"지금도 청년들이 주먹 불끈 쥐고 '아침이슬'을 부르면 전율을 느끼죠. 단순히 김민기의 노래가 내 마음에 공명을 일으켜서 부른 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 위에 의식을 얹어놓은 거죠. 날 보고 1970년대 대표 가수라고 하지만 '제 2의 아침이슬'을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수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죠."
'금지곡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만큼 그녀의 포크 음악은 사회로부터 '찍혔다'. 그런 그녀가 쫓기다 시피 온 곳은 바로 라디오 부스. "35년간 라디오 DJ만큼은 목숨 걸고 했다"는 그녀에게 라디오는 해방구이자 소통 창구였다.
"과거만 해도 청취자 사연 읽는 것이 그 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회의도 들었죠. 하지만 부부문제나 매 맞는 아내 이런 사연들을 소개하면서 서로 걱정해주고 조언해주면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나 역시도 살면서 놓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죠. 라디오 방송을 하며 배운 '인생학교' 수업들을 이번 새 음반에 실었답니다."
그녀가 발표한 35주년 음반은 말이 기념 음반이지 12곡 모두 신곡으로 채워진 새 음반이다. 앨범 전반에 꽃이 그려져 있는 것이 궁금하다고 하자 "나도 이제 늙었나봐. 옛날에는 꽃구경가는 할머니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내가…"라며 웃는다. 9년 전 류마티스를 앓는 남편을 병 수발하며 쓴 타이틀 곡 '당신만 있어준다면'을 소개하며 즉석에서 앞부분을 부르는 그녀, "세상 부귀영화도 세상 돈과 명예도 당신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라는 가사가 푸근하다. 이 외에도 '내강아지', '못다한 노래' 등 수록곡 모두 함께 늙어가는 이 세상의 모든 아줌마들에게 바치는 선물처럼 들린다.
"내 인생은 이제 가을이고 저물지만 이제야 꽃이 피는 것 같아요. 요즘 한국말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후배들 노래가 많은데 거기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내 노래를 이해할지 모르겠네요. 어떨 땐 나이 들면 죄인인 것 같기도 해요. 문화가 다양하지 않고 편식만 하는 것 같아서 영…"
푸근한 중년으로 35주년을 맞은 그녀에게 예전 같은 사회저항적인 모습은 사라진 걸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휴, 나이 50 넘어서도 날카로우면 그 인간 어디다 써… 아직도 청바지 입을 만큼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잔다르크야?"라며 웃는다.
35년 동안 그녀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비결은 간단하다. 늘 목에 수건을 둘러 보호하고 소금물을 코로 들이마셔 입으로 뱉는 것. 하루 5시간 발성연습은 기본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무대 공포증이란다.
"과거만 해도 통기타 하나 들고 멋모르고 덤볐는데 40이 넘어가 무대에 서니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그래도 몸이 튼튼해서 기절은 안해요. 우리 남편은 '그 많은 세월을 노래했으면서 바보같이… 관둬'라며 윽박지르지만 전 두려움이 좋아요. 그것 때문에 지금도 겸손하게 노래할 수 있으니까요."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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