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편의 산문은 그 자체로 역사이기도 하다. 엄혹했던 1980년대에 썼지만 책으로 묶지 않고 아껴 두었던 글부터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 다양한 주제의 산문들이 묶여 있다. 교수들의 가방까지 검색하던 1980년대, 과소비가 번지기 시작한 1990년대 등 김 씨는 사회 문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던진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도시락 두 개를 들고 귀가하는 여고생 딸을 안쓰러워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쓴 글 ‘딸 마중’에서도 입시 위주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담겼다.
시인의 따뜻한 정서가 잘 드러나는 글모음은 4부 ‘빠른 시대의 느린 시’다. 시인으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김 씨는 “시대 현실을 매우 예민하게 반영하면서도 가장 느린 속도로 만들어지는 시”의 아름다움을, “세상의 온갖 소란한 외침을 이기는 시인의 낮은 목소리”의 소중함을 차분하게 전달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