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이 있어 은행에 갔는데 줄이 너무 길다. 나중에 다시 오자 생각하고 돌아간 적이 있는가. 저자들에 따르면, 그 결정은 틀렸다. 그곳까지 오는 시간 비용을 이미 써버렸고 나중에 다시 오려면 똑같은 비용을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 비용을 고려한다면 지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나중에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짧다. 가장 현명한 결정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며, 이보다 더 현명한 결정은 기다릴 것을 예상하고 책이나 잡지를 들고 가는 것이다. 줄을 서지 않고 떠났다가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나중에 다시 오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볼일을 보러 와서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나, 아니면 커피를 마셔야 하나”라고 썼다. 삶의 모든 문제는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에서 경제학자와 컨설턴트인 두 저자의 조언을 한번 들어볼 만하다.
저자들은 경제학과 의사결정학의 개념을 상식과 접목해 14가지 의사결정의 원칙을 설명한다. 예컨대 경제학의 기회비용, 매몰비용, 한계수익에 대한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뭔가를 결정할 때 꽤 유용하다.
기회비용은 포기한 가치 중 가장 높은 가치의 비용이다. 일요일에 영화를 볼까 쇼핑을 할까 고민하다 영화를 보러 갔다면, ‘쇼핑을 하는 데 두는 가치’가 영화 보는 일의 기회비용이다. 판단은 기회비용에서 나온다. 뭔가를 결정할 때는 선택한 대안이 기회비용보다 더 가치 있는지를 늘 따져봐야 한다.
저자들은 또 무언가를 결정할 때 이미 써버린 비용, 즉 매몰비용은 잊으라고 조언한다. 몇 년째 에베레스트 등반을 준비해 왔는데 등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치자. 허가 받는 일이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싶다가도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 에너지가 아까워 그럴 수 없다. 게다가 인류의 모든 위대한 업적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뤄낸 것 아니던가. 그러나 저자들은 ‘만일 당신이 지금의 자원과 능력을 갖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래서 반드시 경험하고 싶은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이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고 조언한다. 그 답이 에베레스트 등반이라면 계속해야 하지만, 아니라면 행로를 바꿔야 할 때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은 모두 지나가고 매몰돼 의미가 없다. 모든 결정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하지 않으냐는 반감도 때로 든다. 그러나 저자들의 조언을 실제 경험에 대입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저자들이 소개한 의사결정나무 같은 기법은 일상에서도 유익할 듯하다. 문제는 과거에 대해서는 분석과 판단이 가능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선택은 여전히 자신의 몫이다. 원제 ‘Making Great Decisions in Business and Life’(2006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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