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우드는 뉴욕타임스 기자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커맥기 핵연료 재처리공장의 방사능 피해에 관한 자료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크레센트에 있는 커맥기 공장은 실크우드의 직장이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플루토늄 연료봉을 만드는 노동자였다.
실크우드가 공장의 문제를 폭로하기로 결심한 직접적 계기는 스스로 방사능 오염을 겪으면서였다. 공장의 노조 활동가로 현장조사에 앞장서면서 방사능 안전시설이 턱없이 미비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꾸준히 자료를 모으던 터였다. 그러던 11월 5일 일과를 마치고 방사능 검사를 하다가 자신이 기준치의 40배가 넘을 정도의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엔 장갑에 구멍이 나서 방사능에 노출된 줄 알았는데 아무리 장갑을 살펴봐도 멀쩡했다. 다른 무엇이 있었다.
특수공기정화장치로 방사능을 제거한 다음 날 저녁, 검사에서 또 방사능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일 서류작업만 했을 뿐 방사능 시설엔 손도 대지 않았던 실크우드는 검사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다음 날 검사에선 방사능이 폐에 침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크우드는 회사 측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사측의 답변은 형식적이었고 심지어 회사를 음해하려고 자작극을 벌인 게 아니냐며 반박하기까지 했다. 실크우드의 사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의 몸에서 검출된 방사성 물질은 공장 내 일부 작업지대에서만 사용되는 것이었다. 실크우드는 사망하기 전 4개월간 그곳에 간 적이 없었다. 공장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돼 있다는 증거였다.
곧바로 실크우드는 뉴욕타임스에 연락했다. 13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기자를 만나기로 하고 자료를 챙겨 아침에 출발했지만 그는 약속 장소에 가지 못했다. 경찰은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라고 발표했으며 실크우드가 갖고 있던 자료에 대해서도 “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밝혔다.
자신이 겪었던 방사능 공포를 세상에 알리겠다던 실크우드의 의지는 의문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노조와 환경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본격적인 의혹이 제기됐으며 반핵운동이 확산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커맥기 공장은 이듬해 문을 닫았고 1986년 유족이 낸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커맥기사가 실크우드 유족에게 1050만5000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메릴 스트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실크우드’(1983년)의 개봉으로 이 사건은 널리 알려졌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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