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축 쳐지면 심호흡 한 번 하고 미소 지어요. 저라고 아픔이 없겠어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살다보면' 같은 노래가 나오긴 힘들죠. 하지만 워낙 튼튼한 지라 그런 슬픔도 잘 딛고 일어서는 편이죠."
어느덧 데뷔 21년째. 지난 세월을 '느린 걸음'이라 칭하는 그녀는 "음반 판매량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하는 법에 더 관심있었다"라며 웃는다. 1985년 강변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녀는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20대를 보냈고 1992년에는 솔로 가수로 전향, '살다보면',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5년 만에 발표한 6집 '나무' 역시 "5년쯤이야"라며 배짱을 부린 셈. 말투도, 삶도 '느린 걸음'이다.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게 되더군요. 나이가 드니 헤어지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 하는 순간도 지나면 돌아오지 못하니…"
6집은 그녀와 꼭 닮아있다. 10여 년 간 '포크가수'로 활동한 그녀는 이번 앨범에서 통기타와 작별을 하고 피아노를 맞이했다. "기계음에 지쳤다"며 콘트라베이스, 첼로 등 단촐한 악기 몇 개로 삶을 노래한 그녀는 스스로 '음악 예술(아트 팝)'을 하고 싶었단다.
"5년 동안 많이 변했어요. 결정적 계기는 2년 전부터 해온 겸임교수(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 일이죠. 강의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음악 공부를 하다보니 그간 내 음악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요. 늘 포크음악만 듣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나 정경화 씨 등 클래식 음악도 들었죠."
'느림'의 미학을 담되 절대 쳐지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그녀의 음반은 첫 곡 '아리랑'부터 가슴을 파고든다. 민요 아리랑을 변주해 만든 이 곡은 피아노 연주와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가 유리처럼 투명하다.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지하철 3호선 안에서 만들었다"는 '푸른 강물 위의 지하철'은 변해버린 친구들의 모습을 노래한 곡. 3박자 곡 '피아노'는 아홉 살 때 다녔던 동네 피아노 학원을 떠올리며 만들었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작곡했다"는 그녀는 은근히 '음악 신동'임을 자랑하는 듯 웃는다.
"음악이 소비되는 시대에 제 음반은 그런 분위기를 역행했죠.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음악, 갈수록 자극적인 가사,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을까 조급해하는 분위기… 하지만 단 몇 개의 악기로도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음악은 상품이 아닌 예술이니까요."
인터뷰 말미 그녀는 "내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에 날개짓을 할 거라 생각하니 너무 신비롭지 않아요?"라며 가슴에 손을 살포시 얹는다. '노찾사' 멤버로 노래를 찾아보겠다고 나선 지 21년. 40이 넘어도 여전히 '노래'의 '노'자를 찾고 싶어 하는 그녀는 여전히 푸근하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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