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국어는 이념이다… ‘국어라는 사상’

  • 입력 2006년 11월 18일 02시 57분


◇국어라는 사상/이연숙 지음/387쪽·2만 원·소명출판

국내에서 외국어를 배운 사람들이 현지에서 가장 큰 곤란을 겪는 것은 해당 언어의 복수성이다. 문법책을 통해 배운 단일한 체계와 규범이 사실은 일부 지역과 계층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연숙 일본 히토쓰바시대 교수의 ‘국어라는 사상’에는 이런 언어의 복수성을 억압하고 그것을 하나로 표상하는 것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 담겼다. 그 방법론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국민국가론도 언어사회학도 아닌, 타자와 비국민의 시각이다.

이 시각에서 바라보면, 국어란 국가 공동체에서 유통되는 언어 통일체가 정말로 존재하는가라는 회의와 의심을 부정하기 위해 근대에 창조된 개념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국어 개념이 창조(날조)되는 기원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해, 일본이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동시에 제국주의화하는 계기가 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여기에 가로놓여 있음을 증명한다. 이 시기에 언문일치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면서 국어가 자명한 어떤 것으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언문일치는 단순히 입말과 글말을 일치시킨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떠한 입말과 글말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과정 속에서 국어를 국가의식과 결부시키고, 국어를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국어이념의 형성’에서 중요하다.

여기에서 언어의 기능성을 중시하는 관점(개혁파)과 언어의 정신성을 중시하는 관점(국수파)이 서로 갈리지만, 전자가 공간적으로 단일한 일본·일본어를 구상한다면 후자는 시간적으로 단일한 일본·일본어를 구상할 뿐이다. 저자에 따르면 언어를 소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언어도구관과 언어를 민족정신의 정수로 간주하는 언어민족주의는 동일한 언어인식의 쌍생아인 것이다.

그 가운데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언어도구관을 대표하는 두 인물, 우에다 가즈토시(上田万年)와 호시나 고이치(保科孝一)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출신의 저자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데, 그것은 언어도구관이 국어의 공간적 통일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언어도구관을 가진 개혁파들은 일본제국의 확장에 따라 식민지까지 포함한 국어를 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식민지에 일본어를 보급하려고 하면 할수록 일본 내에서도 언어가 통일돼 있지 않다는 ‘국어의 결여’가 더욱 뚜렷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어의 확장은 국어의 개혁과 다시 연계됐다.

언어도구주의자들이 빛을 발한 것은 오히려 패전 후였다. 그들이 주장한 기능어로서의 국어가 실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언어의 복수성을 억압하고 국어를 자명한 것으로 표상하는 ‘국어라는 사상’은 일본어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쿠고(國語)를 ‘국어’로 번역해 사용하는 한국어에도 그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한국어의 세계화라는 말속에서 그 그늘이 더욱 짙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기우일까.

윤대석(한국학) 인하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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