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Style]소설가 신경숙씨가 영화를 찍는다고?

  • 입력 2006년 11월 18일 03시 01분


“‘신경숙’이가 영화 찍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웃을 거예요, 호호호….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삐뚤삐뚤하게 나오거든요. 저 같은 ‘기계치’가 영화를 찍는다니 스스로도 상상이 안 됩니다.” (소설가 신경숙)

신 씨가 펜 대신 6mm 디지털 캠코더를 든다. 만화가 이우일, 미학자 진중권, 화가 김점선, 패션잡지 에디터 이충걸 씨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잠시 본업을 제쳐두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신 씨가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도 상처를 안고 평생을 주변부에서 서성거릴까. 미학이론가 진 씨가 제작할 영화의 ‘영상미’는 어떤 느낌일까. 국내 최고의 패션리더 이 씨의 영화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어떻게 다를까.

내년 6월 열리는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ANeFF) 본 행사에서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다. 이에 앞서 16∼18일 쇼케이스 형식의 미니영화제 격인 ‘2006 ANeFF’의 ‘아이 디렉터(I. DIRECTOR)’ 부문에서 만화가 이우일 씨의 작품 ‘굿바이 알라딘’이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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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

유명 인사들의 영화 제작은 영화제 주최 측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디지털의 힘 덕분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의 자리를 대신한 것처럼 비전문가라도 디지털 캠코더를 이용해 영화 제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영화제 측은 각각의 디지털 단편 영화에 시나리오 작성에서 촬영, 편집 등에 들어가는 실비 1000여만 원을 지원한다.

신경숙 씨는 영화를 찍자는 제안을 받고 한참을 망설였다. 카메라의 시선을 활용한 소설 작법엔 익숙하지만 직접 카메라를 드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영화제 측은 최근 신문 연재소설에 몰두하고 있는 그에게 “남편인 시인 남진우 씨와 함께 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기도 했다.

“속도감이 빠른 영화보다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나무 사이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같은 영화를 좋아해요. (내가 만든다면)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요.”

진중권 씨는 흔쾌히 영화제작 제의를 수락했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까지 배우겠다며 영화감독 데뷔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 ‘붉은 돼지’의 주인공 닉네임인 ‘포르코 로소’의 이름을 딴 경비행기 조종에 푹 빠져 있다.

“배운 지 다섯 달이 됐고 비행시간은 벌써 32시간이 넘었어요. 경비행기 SF영화를 만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미국 할리우드식으로 복잡한 컴퓨터 그래픽(CG)을 쓰기보다는 일상과 SF가 적절히 조화된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다양한 소재, 디지털에 담다

남성패션잡지 GQ의 편집장 이충걸 씨는 영화 제작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기존 영화의 문법을 답습하고 싶지 않아요. 삶의 놀이터에 잠시 놀러 왔다는 마음으로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겠습니다.”

연말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겠다는 이 씨의 아이디어는 대략 이렇다.

“어머니와 관련된 소회들을 차례로 나열할까 합니까. 10년을 알고 지낸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님의 이야기, 롤러코스터와 같은 GQ 편집실에서의 하루를 이야기로 기록할 수도 있겠지요.”

화가 김점선 씨는 아직 영화 출품을 최종 결정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지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75년 홍익대 졸업식에 관을 등장시킨 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홍씨 상가’라는 영화로 만들어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홍대를 졸업하는 김방옥(연극평론가) 씨를 놀래 주려고 졸업식장에 관을 들고 들어갔어요. 졸업은 축하의 대상이 아니라 청춘이 끝나고 급속하게 타락하는 때가 됐다는 이야기를 해 주려고 했죠.”

그는 “퍼포먼스 촬영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니 형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라”며 “‘유신의 죽음’을 묘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영화를 만든다면 손이 많이 가는 영화를 찍고 싶어요.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컴퓨터로 편집하면 결국 기계가 다 하는 거잖아요. 동영상에 펜 마우스로 그림을 그려서 한 인간의 내면 세계와 미묘한 감성 변화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동아일보 연재만화 ‘도날드 닭’으로 사랑받은 만화가 이우일 씨가 선보인 ‘굿바이 알라딘’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용해 만든 10여 분 분량의 영상물이다. 찍는 즉시 사진을 확인할 수 있어 ‘알라딘의 마술램프’로 불리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이다.

영화제 위원장인 서울예대 영화과 강한섭 교수는 “우리의 목표는 더는 영화가 전문 감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스타 배우의 출연, 광고, 스크린 확보 등의 문제만 해결되면 디지털 캠코더 영화가 기존 충무로에 도전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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