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인테리어]예술 작품 같은 사무실…그녀 가슴은 설렌다

  • 입력 2006년 11월 18일 03시 01분


BAT코리아. 원대연 기자
BAT코리아. 원대연 기자
외국계 기업의 직원들은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공간에서 일한다. 일만 해야 할 것 같은 ‘사무실’ 느낌이 나는 사무실은 글로벌 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모토로라코리아, 맥킨지 서울사무소, 디아지오코리아(위부터). 사진 제공 모토로라코리아, 맥킨지 서울사무소. 디아지오코리아
외국계 기업의 직원들은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공간에서 일한다. 일만 해야 할 것 같은 ‘사무실’ 느낌이 나는 사무실은 글로벌 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모토로라코리아, 맥킨지 서울사무소, 디아지오코리아(위부터). 사진 제공 모토로라코리아, 맥킨지 서울사무소. 디아지오코리아
《섬처럼 꾸민 사무실, 곳곳에 값비싼 술병이 놓인 바(Bar) 분위기의 사무실, 정겨운 한옥 사랑방을 연상시키는 사무실….

심지어 터미널과 고층 빌딩 숲, 화려한 거리를 옮겨온 듯한 사무실도 있다.

이만하면 매일 하는 출근이라도 설레지 않을까.

국내에 진출한 유명 글로벌 기업들은 이처럼 독특한 인테리어를 시도해 사무실을 색다른 공간으로 꾸민다.

글로벌 기업이 사무실 인테리어에 투자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하지만 단순히 고급스럽게, 혹은 첨단 이미지로 꾸미기 위해 돈을 들이는 건 아니다.》

100곳 이상의 외국계 기업 사무실을 디자인한 다원디자인의 조규화 사장은 “많은 기업이 사무실 인테리어를 통해 회사의 문화와 철학, 제품 특성, 지향하는 목표 등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제품에 특별한 이야기를 담는 ‘스토리 마케팅’이 유행인 것처럼 인테리어에도 완결성이 있는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는 것이다.

다원디자인이 담당한 외국계 기업의 사무실 중 특별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곳들을 둘러봤다.

○사무실이 하나의 도시

담배 메이커인 BAT코리아의 서울 사무실은 BAT 직원과 고객들 사이에 ‘BATK 시티’로 불린다. 사무실 인테리어를 구상할 때 도시라는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강남 스타타워 맨 위층에 있는 BATK 시티는 높은 하늘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천장 높이를 일반 사무실의 2배 정도인 6.7m로 설정했다.

입구는 방문객들에게 도시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터미널 분위기를 냈다. 입구에서부터 응접실 용도로 쓰이는 리셉션 공간까지의 높은 천장과 벽에는 각종 전광판과 스크린이 설치돼 있어 공항과 역의 출구에서 나오는 느낌이 든다.

‘BAT 광장’으로 불리는 메인 통로 옆에는 ‘던힐’ ‘보그’ ‘쿨’ 등 BAT의 주요 제품 이름을 딴 스트리트(미팅룸)가 차례로 나타난다. 광장 벽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은 색상과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변하는데 마치 도시의 고층 빌딩 숲이 자아내는 야경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미팅룸 안에는 담배를 상징하는 모양의 문양과 조명도 설치돼 있다.

BAT는 전 세계 지사의 오피스 인테리어를 디자인할 때 ‘세계 최고(Top of the world)’를 추구한다. 고급 자재와 독특한 디자인을 이용해 럭셔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라는 것이다.

BAT코리아의 이석호 부장은 “BAT코리아 시티는 ‘Top of the world’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시’로 해석해 스타타워에서 가장 높은 층을 택했다”고 말했다.

○술집과 섬에서 일하다

‘여기 술집이야?’

윈저, 딤플, 크라운 로열, 조니 워커 등 유명 위스키를 생산하는 디아지오의 한국 오피스는 처음 방문한 순간 잘못 찾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테리어가 파격적이다. 입구와 라운지가 고급 바의 분위기로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선 은은한 블루 계열의 조명과 함께 둥근 유리로 제작된 거대한 쇼윈도가 방문객을 맞는다. 주류 회사답게 쇼윈도에는 다양한 술이 전시돼 있다.

쇼윈도의 한쪽에는 바 테이블과 함께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자리를 차지했다. 사무실 벽엔 클럽이나 바의 벽화를 연상시키는 모던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바텐더가 주문을 받고 흥에 겨운 사람들이 춤을 추면 어울릴 듯한 분위기다.

모토로라코리아도 인테리어 감각이 돋보이는 기업이다. 이 회사의 입구 카운터는 커다란 휴대전화 모양이다. 휴대전화 회사에 찾아왔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오피스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바다 위의 섬’을 모티브로 삼았다.

넓은 일반 사무 공간은 ‘바다’, 미팅룸과 임원실 등 별도 룸은 ‘섬’의 개념이다. 섬들은 바다 곳곳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데 블루, 그린, 오렌지 빛깔의 플라스틱 벽면이 섬을 에워싸 화려하다.

모토로라코리아 홍보기획실 윤지윤 대리는 “개방된 공간과 분리된 공간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바다 위의 섬’ 개념을 도입했다”며 “섬들은 설치와 이동이 편리해 사무실에 변화를 주기도 쉽다”고 말했다.

○한옥 사랑방에서 상담하다

외국계 기업이지만 사무실 인테리어가 한국 기업보다 더 ‘한국스러운’ 회사도 있다.

독일계 은행인 도이치뱅크코리아와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 서울사무소가 대표적. 두 회사 모두 한옥을 인테리어 콘셉트로 활용했다.

도이치뱅크코리아의 사무실 안에 있는 문은 한옥의 전통 문과 비슷하다. 작은 조약돌로 이뤄진 안내 데스크의 벽은 조약돌이 깔려 있는 한옥 앞 냇가를 상징한다. 라운지의 탁자도 한옥에 어울리는 한국식 디자인이다.

‘기업 혁신의 전도사’를 표방하는 맥킨지의 서울사무소도 혁신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정적인 한옥 분위기다. 사무실 출입문이 한옥의 문과 같은 모양인 건 물론이고 바닥도 한옥의 마루를 연상시키는 목재로 돼 있다.

맥킨지 서울사무소의 심재곤 이사는 “업체 특성상 최고경영자(CEO)와 중역처럼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라며 “상담을 위해 회사를 방문한 클라이언트들이 한옥의 사랑방에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꾸몄다”고 설명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외국계 기업 인테리어 전문 조규화 다원디자인 사장

시시콜콜 얘기해주는 CEO와 일할 때 영감이 터지더라고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일하기 쉬운 회사와 일하기 즐거운 회사는 다릅니다. 전 세계적으로 똑같은 디자인을 적용하는 회사가 전자라면 최고경영자(CEO)가 인테리어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회사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1995년 다원디자인을 설립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의 사무실 인테리어를 전문적으로 디자인해 온 조규화(45·여·사진) 사장은 ‘말이 많은 CEO’와 일할 때 가장 즐겁다고 했다. 다원디자인의 주 고객은 골드만삭스 마이크로소프트 맥킨지 ABN암로 다임러크라이슬러 노무라증권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

조 사장이 꼽은 ‘말이 많은 CEO’란 자신과 직원들이 원하는 인테리어 희망 사항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첨단 기술의 느낌이 나도록 꾸며 달라’고 애매하게 주문한다면 요구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첨단 기술의 느낌’과 CEO 머릿속에 있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가 모리스 사장과 마지막 협상을 벌였던 회의실처럼 모던한 분위기가 나게 해 달라”는 식으로 부탁하면 디자이너는 훨씬 더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아직까지는 외국인 CEO가 한국인 CEO보다 훨씬 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며 “외국인 CEO들은 소설과 영화의 장면, 다른 사무실의 예를 들어가며 자신이 원하는 인테리어를 설명하지만 한국인 CEO들은 막연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조 사장이 꼽는 이상적인 사무실 인테리어 구성 방식은 CEO가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자신이 특별히 원하는 분위기를 더하는 것. 그 후 디자이너와 여러 차례 만나 의견을 교환하며 밑그림을 그리면 금상첨화라는 것이다.

조 사장은 미국 오하이오대와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운 뒤 미국 디자인 업체에서 근무하다 1990년대 초 귀국해 국제감각을 살려 글로벌 기업의 인테리어에 특화했다.

그는 “사무실은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꿈과 희망을 이뤄 나가는 터전”이라며 “한국 직장인들의 일터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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