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놀이터에는 미끄럼틀 골라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빨강, 노랑, 파랑 색깔도 다르고 길이와 경사도, 모양까지 제각각인 10여 개의 미끄럼틀이 나란히 줄을 맞춰 있는 것이 마치 미끄럼틀 박람회장 같다.
“내가 어느 쪽으로 내려가는지 알아 맞혀보세요.”
10개 미끄럼틀을 오가며 분주한 아이들을 보며 ‘내 아이는 어느 구멍으로 나올까?’ 우왕좌왕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재미있다.
각양각색 미끄럼틀 위쪽으로 경사진 언덕에 만들어 놓은 특이한 미끄럼틀도 있다. 한번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려면 등산이라도 하듯 땀을 흘리며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흙을 밟을 수 있으니 자연친화적인 것이 장점이다. 보통 미끄럼틀보다 길이도 길어서 내려오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아이들은 짜릿한 쾌감을 위해 언덕을 오르는 고행(?)을 해야 하니, 어릴 적부터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미끄럼틀이라고나 할까. 엉덩이가 닿는 바닥이 가느다란 롤러로 끝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미끄러질 때 엉덩이 밑에서 롤러가 ‘도르르’ 구르는 느낌이 재밌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놀이터 미끄럼틀은 미술 작품 같은 것들이 많다. 아이들 키의 두세 배는 훌쩍 넘는 야구 글러브 모양, 꽃 모양 같은 조각 작품에 올라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미끄럼틀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미끄럼틀’이다. 경사도가 거의 없어 미끄럼틀을 가지고 논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아이들은 서서 걸어 내려오기도 하고 아예 밟고 올라가 내려오기도 한다. 이 보다 더 안전한 미끄럼틀도 있을까. 실제로 영유아 것으로 보이는 작고 귀여운 발자국들로 가득하다.
샌프란시스코 놀이터는 은색과 회색이 주조를 이뤄 마치 사이버 공간처럼 보인다. 우주를 테마로 한 놀이터라고나 할까. 미끄럼틀도 우주선의 한 부분처럼 반짝이는 은색의 긴 관이었다. 멀리서 보면 괴물체 다리 같기도 하다. 따로 계단이 없이 쿠션감이 좋은 경사로를 올라가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신난다.
캐나다 밴쿠버 쌍둥이 미끄럼틀도 재미있다. 같은 길이, 같은 각도의 미끄럼틀이 나란히 붙어 있어서 친구, 형제, 자매가 함께 타기에 좋다. 공룡 미끄럼틀도 멋지다. 마치 아이들이 공룡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도 도쿄의 미끄럼틀처럼 자연지형을 이용한 것이 있다. 언덕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뻗은 초록색의 통 미끄럼틀인데 설치했다기보다 ‘놓았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은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거나 따로 설치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 미끄럼틀에 몸을 맡긴다. 흙 범벅이 된 아이들과 주변 풍광의 조화가 아름답다.
더블린 놀이터에서 만난 미끄럼틀에는 미끄럼방지 깔판을 장착한 경사로를 두어 안전에 신경을 쓴 점이 눈에 띈다. 장애아들도 즐길 수 있다. 프랑스 파리의 놀이터에는 눈에 잘 띄는 입구에 미끄럼틀의 사진과 함께 이용가능한 연령을 표시한 안내판을 둔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 ‘모두 기본을 잘 지켜 안전하고 재밌게 놀자’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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