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은 백제 왕경'…서기 200년대 도로유적 확인

  • 입력 2006년 11월 21일 12시 04분


서울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3세기 무렵 조성된 고대 백제 도로 유적과 단면 도면(사진). 이 도로는 풍납토성이 백제가 한성에 도읍하던 시대의 왕성(王城)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서울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3세기 무렵 조성된 고대 백제 도로 유적과 단면 도면(사진). 이 도로는 풍납토성이 백제가 한성에 도읍하던 시대의 왕성(王城)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국내 최고(最古)의 백제 왕궁 아스팔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197번지 일대(옛 미래마을부지)에서 '발굴조사 현장 설명회'를 열고 "백제 초기 도성 풍납토성(사적 제11호) 발굴 결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 유적을 비롯해 대형 폐기장, 석축, 수로, 주거지 등 80여기의 유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성백제(기원전 18년~서기 475년) 당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로는 너비 8m, 길이 41m에 이르는 남북 도로, 너비 5m 가량의 동서 방향 도로 등 2개다. 너비 7.5~8m 정도의 이 도로는 땅을 얕게 판 후 가운데 부분에 폭 5m, 두께 20cm 가량의 잔자갈을 볼록하게 깔아 도로 양 측면으로 빗물이 흘러내려 배수가 가능하게 축조됐다.

문화재연구소 신종국 학예연구사는 "도로가 한성시대 후기에 들어선 주거지나 수혈(구덩이)에 의해 파괴된 된 점을 감안하면 축조시기가 한성 도읍기인 3세기 무렵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자갈을 다진 포장 방식은 많은 공력이 소요되는 것으로 사비 시기 부여의 궁남지, 관북리 유적, 익산의 왕궁리 유적의 도로가 포장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볼 때 당시 풍납토성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풍납토성 도로 유적 건설 시기가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던 신라 왕경(王京)이나 백제 사비 시기(A.D.538~660)의 도로 조성 연대인 6세기보다 300년 이상 앞선다. 문화재연구소는 또 이런 규모의 공사가 가능하다는 것은 풍납토성이 백제가 한성에 도읍하던 시대의 왕성 또는 왕경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밝혔다.

모래와 자갈이 자연적으로 퇴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연구소 측은 △모래층과 자갈층이 물에 휩쓸려 퇴적될 경우 무거운 자갈층이 모래층 하부에 먼저 쌓이며 △자갈층 뿐 아니라 그 위에 넓직한 할석(割石)을 사용한 점 등으로 볼 때 인공 도로가 확실하다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7번지 일대(20,955㎡)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조사를 2010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며, 그 이후에도 풍납토성 내 사적지정지역에 대한 연차조사를 벌여 풍납토성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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