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승현 씨 부인은 “학교 동창-동호회 모임이 최고”
가족·친척을 제외한 홍승현(48) LG전자 부장의 인맥은 70%가 넘게 직장과 관련된 직연(職緣)이다. 그의 나머지 인맥은 학교 동창과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동네 이웃, 군대 동기 등이다.
이에 반해 부인 김경희(41) 씨는 인맥의 분포도가 훨씬 다양했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김 씨는 학원장 등 일과 관련된 인맥 외에 헬스클럽 모임, 문화센터 모임, 학부모 모임 등 동호회 성격의 모임이 많았다.
특히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 동창 모임은 김 씨 인맥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초중고교 친구들과는 3개월마다 친목 모임이나 운동회를 하고, 음대 출신인 대학 친구들과는 자선연주회 활동을 한다고 했다.
홍 부장 부부에게 친구는 ‘삶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특히 고교 동창들과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해 서로 마음의 위안이 된다고 했다.
부인 김 씨는 “사춘기를 함께 보낸 고교 친구들에게 친근함을 많이 느낀다”면서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돼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 부장도 “나이가 들면서 친구가 더 그리워진다”며 “바쁘다는 핑계로 소원해진 친구들을 수소문해서라도 만날 계획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 부부는 은퇴 이후를 대비해 인맥 관리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홍 부장은 “직업으로 맺은 인맥의 70%는 은퇴 이후 끊어질 것으로 본다”며 “퇴직 후에도 직장 주변 사람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인맥 관리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 자녀들 “휴대전화-인터넷 없는 것 상상 못해”
이들에게 인간관계는 ‘우물 정(井)’자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여러 사람과 세대, 상하 구분 없이 소통하면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기댄 모습의 ‘사람 인(人)’자처럼 얼굴을 맞대야 ‘관계’로 보는 기성세대와는 인맥의 개념이 다르다.
정민 군은 올해 중앙대 식품생명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하고 재수를 하고 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130여 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그는 사람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고 했다. 또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것보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를 ‘날리는 것’이 더 편하단다.
정민 군의 인맥이 휴대전화 주소록으로 관리된다면, 초등학교 6학년인 정수 군의 인맥은 ‘메신저’로 통한다.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버디버디’라는 인터넷 메신저에 정수가 등록한 친구는 200명 정도.
직접 정수 군의 ‘메신저 대화’를 옆에서 지켜봤다. 컴퓨터를 켜자 친구들의 수다가 쏟아졌다. 정수 군은 ‘ㅎㅇ’라고 쳤다. ‘ㅎㅇ’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하이’란다. ‘응’은 ‘ㅇㅇ’으로 쓰고, 문장이 끝나면 ‘.’대신 ‘;’를 쓴다. 이유는 없다. 유행일 뿐이다.
이들은 또 일대일로 대화하지 않는다. ‘전쪽(전체 쪽지)’이라는 기능을 써서 ‘다(多) 대 다(多)’ 대화를 즐긴다. 관심이 가면 응답하고, 싫으면 무시한다.
정수 군 또래의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인연을 이어주는 ‘끈’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가 된다는 것. 정수 군은 4학년 때 전학 간 친구와 버디버디로 숙제를 서로 도왔고, 멀리 떨어져 있어 축구를 같이 못하지만 컴퓨터로 ‘피파 온라인’ 축구 게임을 즐긴다고 했다.
○ 부모는 “신앙으로 인맥 유지하죠”
인생의 황혼기 70대.
어렵게 형성한 인맥의 적잖은 부분이 끊어지는 나이다.
홍성택(76) 강정숙(71) 씨 부부는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그 방법으로 택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홍 씨는 1980년 장로가 됐고, 1989년 운수업을 접은 후에는 교회의 사무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노부부의 하루는 매일 새벽기도 후 신자들과 아침을 먹으면서 시작된다.
홍 씨는 매주 화요일 100여 명의 노인이 수강하는 평생대학(노인대학)에서 건강 강의를 듣고, 노래자랑으로 솜씨를 겨룬다. 매주 목요일에는 은퇴한 목사와 장로 70여 명이 함께하는 모임도 있다. 이 외에도 신자들과 함께하는 볼링 모임 등 한 달에 한 번꼴인 모임이 10개나 된다.
교회 밖 모임으로는 매월 한 번씩 만나는 군 동기 모임이 유일하다. 6·25전쟁 당시 강원 인제에서 동고동락한 15명의 전우들이어서 애정이 각별하다고 했다.
“소주 한잔 기울이며 ‘이놈, 저놈’하는 친구들이에요. 모두들 은퇴할 즈음인 1980년대 후반부터 모임이 활발해졌지.”
반면 강 씨는 교회를 빼면 다른 여느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모임이 거의 없다. 강 씨는 “주로 집에서 지내고 며느리가 바쁘면 집안일도 돕는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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