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후쿠야마, 네오콘과 헤어지다…‘기로에 선 미국’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3분


◇ 기로에 선 미국/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유강은 옮김/262쪽·1만2000원·랜덤하우스

“신보수주의는 이제 내가 지지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별 선언’ 또는 ‘전향의 변(辯)’인가. 1989년 불과 37세의 나이에 ‘역사의 종언’으로 일약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올랐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 그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붙어 있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라는 딱지를 확실히 떼어냈다. “인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인간이 짜낸 최고의 지혜에 이르러 역사 이후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사회주의 붕괴 직후 포효했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 이후의 시대’에 대한 불길한 징후들을 읽어낸다.

이 책은 네오콘의 일원이었던 후쿠야마 교수의 자기고백이자 이라크전쟁 실패의 기원을 추적하는 분석서다. 신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서는 수없이 많지만 후쿠야마 교수의 성찰은 그래서 더 울림이 크다.

저자는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미 정부의 잘못된 판단, 즉 ‘광범위한 선제공격 독트린’과 ‘이라크 침공’에 대해 “자연스럽게 도출된 대응이 아니었다”고 비판한다. 급진 이슬람세력의 위협을 과대평가했고, 미국의 ‘선의의 헤게모니’에 대한 전 세계의 부정적 반응을 예측하지 못했으며, 이라크 재건에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다고 지적한다.

여기까지라면 너무나 뻔한 얘기로 치부할 수 있다. 그의 면모는 패착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문명사적 접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신보수주의의 원조인 레오 슈트라우스가 제자들에게 준 것은 ‘공공정책의 지령’이 아닌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음에도 2대, 3대 제자들이 이를 ‘일종의 교리문답’으로 받아들였다는 마크 릴라의 비판에 고개를 끄덕인다.

다양한 갈래를 가진 신보수주의의 공통된 특징은 국가는 정치체제의 유형과 관계없이 힘을 추구한다는 현실주의적 견해에 대한 반감이다. 어떤 정치체제를 갖느냐가 한 국가의 대외정책을 결정한다는 그들의 견해는 민주주의 체제의 전 세계적 수출이라는 신념으로 귀결된다. 또 ‘윌슨주의’를 자처하면서도 국제법이나 국제기구를 철저히 불신함으로써 ‘예외주의’ ‘일방주의’로 치달았다.

게다가 신보수주의는 일국의 정치체제 변화라는 총론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한 사회의 세부적 문화와 관습, 특징, 발전 경로를 무시함으로써 이라크 내전(內戰) 상황과 같은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그럼 미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저자의 답변은 ‘현실주의적 윌슨주의’로의 전환이다. 신보수주의의 이상주의적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각국의 특수한 발전 경로를 인정하며, 일방주의가 아닌 ‘다다자(多多者)주의’를 통해 느리지만 ‘지속가능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다자주의’란 유엔의 동의 여부에 매달리는 ‘다자주의’와는 개념이 다르다. 저자는 유엔을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슈에 따라, 지역에 따라 결성되는 다양한 국제기구를 통해 군사력이 아닌 ‘소프트 파워’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확보해 나가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미국 대외정책의 역사적 모델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아닌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를 꼽는다. 독일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뒤 주변국의 반(反)독일 동맹을 저지하기 위해 ‘약한 척’했던 비스마르크의 ‘안정화정책’을 높이 평가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신앙 때문에 그는 여전히 보수주의자의 범주에 발을 딛고 있다. 하지만 후쿠야마 교수의 초기 역사적 낙관주의는 ‘강한 국가의 건설’ ‘기로에 선 미국’ 등의 저작을 통해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인식으로 선회하고 있다. 원제 ‘America at the crossroad’(2006년).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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