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유혁준]브루크너 “고맙소, 제주市響”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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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제음악제’의 폐막 연주는 제주시립 교향악단이 장식했다. 연주곡은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어 말러와 함께 교향악의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던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 3악장인 ‘아다지오’ 악장만 27분을 훌쩍 넘기는 그야말로 ‘천국적인’ 길이의 난곡 중 난곡이다.

이 초대형 교향곡을 제주시향이 음악적 완성도나 작곡가의 언어를 전달하는 양면에서 거의 완벽한 연주로 이끌어 냈다. 이날 객석에는 이른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서 연주의 질과 관계없이 맹목적인 박수를 쳐대던 과시용 청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에겐 운동장에서 성의 없는 레퍼토리를 들려준 빈 필하모닉보다 제주시향의 혼신의 힘을 기울인 연주가 몇 곱절 감동적이었다.

제주시향은 지난해부터 3년 동안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삼다도 제주시향의 ‘겁도 없는’ 도전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지휘자 이동호 씨다. 그는 브루크너의 고향 린츠의 브루크너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오래전부터 브루크너에 대한 비전을 다져 왔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우선 그는 서울악단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단원들에게 현악기의 활 긋기부터 새롭게 연습시키며 피나는 훈련을 거듭했다. 특히 제주 국제 관악제로 다져진 제주시향의 관악 파트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격상됐다. 이번 연주는 불과 64명의 상임 단원으로 이룩한 쾌거이며 특히 남성 단원들은 생계를 위해 부업까지 하며 오직 음악 하나만 바라보고 이뤄 낸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교향악단은 한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 사절이다. 그러나 국내의 현실은 어떤가? 이제 본궤도에 접어든 서울시향의 공연조차 아직까지는 객석에 빈자리가 많다. 시도마다 공연장이 있으되 전용 콘서트홀을 가지고 있는 교향악단은 단 한 군데도 없다. 건물만 앞 다투어 지어 놓고 상주 악단 하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체 공연도 버겁다 보니 뉴욕 필과 같이 청중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스스로 후원 기업을 확보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연주의 질은 높아졌지만 여기에 걸맞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기획력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지방 악단 가운데 그나마 안정적인 제주시향의 1년 예산은 고작 20억 원. 서울시향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 중 공연 기획에 쓰이는 돈은 2억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지방자치 이후 단체장의 ‘생색내기용’으로 창단된 대부분의 지방 교향악단 경영을 책임지는 사무국 직원은 고작 3명을 넘지 못하는 곳이 허다하다. 혈세로 운영되는 KBS 교향악단은 벌써 4년째 상임지휘자 부재로 연주력의 저하를 불러왔지만 KBS의 ‘높으신 분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대전시향은 내년부터 또다시 지휘자가 공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조짐은 있다.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를 마친 부천 필을 필두로 수원시향, 창원시향 등은 지휘자와 단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음악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여기에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는 지방 교향악단의 수준을 상향 평준화시켰다.

우리나라처럼 클래식 인구 대비 외국 오케스트라의 내한이 빈번한 나라도 없다. 하지만 당장의 화려함보다 실속 있는 교향악단을 키우는 것이 클래식 시장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길이다.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안 필하모닉도 요즘 세계를 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다. 우리 교향악단도 제대로 된 개런티를 받고 해외 초청 순회공연을 가게 되는 날을 보고 싶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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