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암의 ‘본명’은 ‘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 미국 동부 상류층 출신인 주언 트립이 예일대 동창들의 후원으로 1927년 항공사를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그 시절 비행기는 ‘우편집배원’ 역할을 맡았다. 정부에서 내주는 우편 수송 도급을 했기에 항공사들은 적극적으로 국제선 개척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팬암은 달랐다. 최초로 국제 항공 우편 서비스(플로리다∼쿠바 구간)를 시작했고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와 남미로 뻗어 나갔다. 1930년대 중국 노선을 개척했고 대서양 항로를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에는 팬암의 비행기가 세계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범아메리카’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팬암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세를 전 지구로 확장시켰다. 우편물 배달이나 부유층의 자가용으로만 쓰이던 비행기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항공기의 대중화를 위해 팬암은 항공료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전보다 두 배 빨라진 제트엔진 시대가 열린 것도 팬암이 주문한 보잉707 제트비행기가 1958년 파리와 뉴욕을 날면서부터였다. 최대 민간 여객기인 보잉747 점보제트를 개발하도록 보잉사에 제안한 회사도 팬암이었다.
그러나 놀랍도록 선구적이었던 이 기업은 1970년대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1973년 석유 파동의 타격이 컸던 탓이다. 게다가 소홀히 취급했던 국내선에 뒤늦게 투자하느라 많은 비용을 들였지만 경기 악화로 고객이 줄어들면서 수익을 내지 못했다.
1981년 유명한 뉴욕의 팬암 빌딩을 메트라이프에 매각하는 등 자산을 처분했지만 기울어진 사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1986년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항공기 납치 사건에 이어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비행기 공중 폭파 사건이 터졌다. 테러리스트들이 팬암을 미국의 상징으로 여기고 벌인 사건이었지만 항공사의 신뢰는 추락했다. 파산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사기꾼 프랭크가 이 회사의 파일럿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면 팬암이 1970년대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007 시리즈부터 ‘스카페이스’ ‘패밀리맨’, SF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영화 곳곳에서 팬암의 ‘파란 지구’ 로고를 만날 수 있었다. 팬암은 미국 항공사의 간판이었던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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