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 위에 심은 자개, 꽃으로 피고…이정연 교수,5년만에 개인전

  • 입력 2006년 12월 4일 03시 01분


‘Re-Genesis’ 자개를 재료로 사용한 이정연 교수는 자개의 영롱한 빛이 생의 기운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이정연 교수
‘Re-Genesis’ 자개를 재료로 사용한 이정연 교수는 자개의 영롱한 빛이 생의 기운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이정연 교수
삼베, 옻, 돌가루, 흙, 숯, 자개….

이정연(54·사진) SADI(삼성 아트앤드디자인 인스티튜트) 교수의 그림에는 ‘한국의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티에르도 그렇고 평면에 형상화한 기호(대나무 산 연잎 구름)도 그렇다. 한국적 소재를 탐구하는 작가가 많지만 이 교수는 유별나게 소재와 조형에서 “플라스틱 문명을 거부하는 수더분한 촌색시처럼 우리의 자연을 파고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영덕 화랑에서 8∼17일 열리는 5년만의 개인전에서는 자개를 더했다. 이 교수는 “자개는 오랫동안 습작으로 해오다가 이번에 선보이게 됐다”며 “자개는 영어로 ‘마더 오브 펄’인데 진주를 출산하는 고통이 마침내 영롱한 빛으로 승화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작 20여 점에서 자개는 꽃잎 대나무 등 다양한 기호로 형상화된다. 자개를 다루는 방법은 재래시장의 장인들에게서 배웠다.

이 교수의 작업은 오랜 시간 ‘손질’로 이뤄진다. 삼베에 몇 차례 옻칠을 한 뒤 이미지를 넣거나 한지 위에 삼베를 덮어 그 위에 형상을 그려 넣는다. 색칠은 먹 흙 숯가루 등 천연 재료를 손가락에 묻혀 한다. 그림은 토담집의 흙벽처럼 질박해 도시인들이 뿌리칠 수 없는 자연의 정서를 풍긴다. 시각적인 현란함을 배제하고 어눌하면서도 넉넉한 여백의 미를 강조한 점도 특징.

이 교수는 “삼베를 바탕으로 한 그림들이 밝지 않다는 평을 들었는데 자개를 넣음으로써 빛을 더할 수 있게 됐다”며 “붓을 통하지 않고 내 몸의 일부와 그림이 만나는 순간의 행위를 즐긴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와 판화를 전공했다. 동양화를 하면서 왜 유학을 가느냐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정형화된 동양화의 틀을 벗어나 날고 싶었다”며 “10여 년간 현지에서 마음껏 활동하다 보니 어느새 다시 동양화의 품으로 들어와 있었다”고 말했다. 1987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미국 유럽에서 활동했고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시드니를 비롯한 여러 아트 페어에서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디자인 전문 학교인 SADI에서 기초 드로잉을 강의하고 있다. 디자이너들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손으로 형상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질의 무한한 반복을 통하면 자기 내면의 세계가 저절로 형상을 갖추게 됩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열린 마음으로 온갖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를 이뤄낼 수 있지요.”

그는 앞으로 자개를 물감처럼 자연스럽게 화면에 스며들게 하는 실험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시 문의 02-544-8481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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