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승리? 여전히 도전중이죠＂ 두번째앨범 낸 전제덕

1996년 라디오 방송을 듣던 22세 청년이 무릎을 치며 외쳤다. "이 소리, 새롭다."고. 벨기에 출신 재즈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의 연주 한 자락에 감동, 그는 하모니카를 손에 쥐었다. 장구채 잡고 사물놀이를 해오던 그에겐 새로운 길이었다. 그에게 맞는 하모니카를 찾는 데만 3년이 걸렸다. 데뷔 음반을 발표하기까지는 5년을 더 보냈다. 그래도 죽어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장애인'이란 소리.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 이 남자, 전제덕(32). 벌써 두 번째 연주 음반을 발표한단다. 아직은 매니저 손을 잡고 다녀야 하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크리스탈 같지만 금연석인 인터뷰 자리에서 "담배 한 대 피워야 말이 술술 나오는데…"라며 농담 한 마디는 건넬 줄 안다. 이 여유를 부리기까지, 꼬박 10년 걸렸다.

"'시각 장애를 극복한…'이란 수식어, 어쩌면 죽을 때까지 들어야 할 말일지 모르죠. 하지만 의도적으로 '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주문을 외우며 다방면에 의욕을 보였죠. 그래서 그런지 장애 얘기보다 음악 얘기를 묻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세상도 변하기 시작했죠."

2년 전 그가 발표한 하모니카 연주 음반은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진 일종의 '출사표'였다. '혼자 걷는 길', '나의 하모니카', '편지' 같은 그의 곡들은 사람들에게 음악 이상의 인간승리 메시지를 주었다. 작곡가 이영훈부터 '쥬얼리'의 박정아, 랩듀오 '다이나믹 듀오' 등 동료 음악인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다"며 연락해왔다. 내친 김에 이동통신사 광고 모델, 음악 프로그램 MC, 영화 출연, 심지어 일본 재즈클럽 투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는 세상과 친해졌다.

"사실 '인간승리'라는 수식어, 정말 낯설어요.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함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뒤늦게 했을 뿐이에요. '승리'보다 전 아직 '도전' 중이니까요."

그의 두 번째 도전은 바로 7일 발매되는 2집 '왓 이즈 쿨 체인지'였다. 애시드 재즈 풍의 첫 곡 '테이크 잇 오어 리브 잇'부터 감지되는 그의 '변심'은 래퍼 바비 킴이 참여한 보사노바 풍의 '투 스토리즈'에서 다소 완화된다. 그러나 랩 듀오 '인피니트 플로우'가 참여한 업템포 곡 '나이트 투 돈', 뉴 잭 스윙풍의 '타임 포 유'로 이어지면서 그의 하모니카 연주는 트럼펫, 드럼 소리와 함께 빅밴드의 일원인 듯 하다. 마지막 곡 '쿨 체인지'에 이르러 그의 하모니카 연주는 각종 이펙트에 의해 기계음처럼 들린다. 1집이 마치 '착한 남자'처럼 따뜻한 어쿠스틱 감성을 표현했다면 2집은 퓨전재즈, 일렉트로닉 등 차가운 '나쁜 남자'의 감성이 지배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건 마음에 맞는 소리를 찾는 거죠. 악보를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프로듀서와 함께 샘플 CD 하나씩 들어보면서 좋은 소리를 기억해놓죠. 이렇듯 제 음악 작업은 '기억'과의 싸움이랍니다. 이젠 전화번호나 사람 이름 외우는 것만큼 잘 외워요."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열병으로 잃은 시력. 그래도 그는 더 이상 세상 원망은 안 한단다. 7년 전 자신에게 맞는 하모니카를 찾아냈을 때, 앞길이 열린 듯 희망을 느꼈다는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대중을 원망하는 순간 스스로 자만하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에게 음악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니까.

"어릴 적 아버지 경운기 타면서 10년 단위로 '내가 뭘 하고 있을까' 상상하곤 했는데 사물놀이를 할 줄도, 지금 하모니카를 잡을 줄도 전혀 생각 못했죠. 그래서 오늘도 '10년 후 마흔 두 살 때 뭘 하고 있을까' 기대돼요. 혹 스티비 원더와 합동 공연이라도 할까봐 오늘도 하모니카 열심히 갈고 닦아야죠. 하하"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