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장편 ‘호모 엑세쿠탄스’(‘처형자로서의 인간’이라는 뜻) 연재를 마친 소설가 이문열(58·사진) 씨. 봄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초반부터 정국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워 화제가 됐다. 이번에 선보인 완결편에서는 386세대 정치인과 현 정부의 실정, 대북 햇볕정책 등을 조목조목 비판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이 씨는 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작가의 정치적 견해는 모든 소설에 들어 있는 것인데, 각자의 생각에 맞춰 과장하고 시비를 걸고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는 이 씨는 식당에서 나와 1시간 넘게 계속된 통화에서 작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그는 “‘태백산맥’이나 ‘토지’ 같은 소설에도 작가의 사회·정치적 발언이 얼마나 많은가”라면서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가 수십 년이 지났다는 것뿐이지 다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소설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현 시국이 추운 밤 같다는 위기의식에서 열린 ‘한야(寒夜)대회’. 두 장(章)에 걸쳐 전개되는 이 장면에서는 안전기획부 대북파트, 검찰 시국공안, 경찰 대공분실 간부 출신 모임인 삼치회(三癡會)와 옷 벗은 장군들의 모인인 낙성(落星)분회 등이 참가해 햇볕정책과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하는 일부 지식인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 씨는 “우리 사회가 우파적인 해결을 포기하고 좌파적 해결을 설정한 것 같은데 그게 방법은 아닌 것 같더라”면서 “작품은 결과적으로 우파를 편든 셈이 됐지만 무작정 한쪽 편을 들고자 구상한 게 아니고 소설 미학을 갖추기 위해 깊이 고민하면서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그렇다고 우파가 정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현 상황에서 우파가 해결책이 될 경우 호랑이 쫓고 여우 불러들인 꼴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정말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모두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이 같은 소설을 발표한 것을 비판하는 일부의 목소리에 대해 이 씨는 “우리나라가 언제는 선거철이 아니었느냐”면서 “정치적 개입을 시도한다는 등의 얘기는 나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반박을 이어 갔다. 자신의 소설이 정치적으로만 해석된다는 게 무엇보다 불만이라고 밝힌 그는 “이 소설은 오락물로 쓴 게 아니라 미학적 장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설에서 표출된 정치적 견해 중 많은 부분은 내 것일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소설을 쓴 것”이라며 “견해에 동의하고 말고는 독자의 몫이며 소설은 소설로서 봐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체류 작가 자격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1년째 지내는 이 씨는 연말 귀국했다가 내년 초 출국한다. 이후 미국에 얼마나 머물지는 고심 중이다. 그는 “곧 환갑인데 뭘 더 하겠나 싶은 마음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기분도 있다”면서도 “남은 삶을 위해 충전해야 할 게 있는지 고민해 보고, 6개월 정도 또는 그 이상 체류할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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