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집-맛의 비밀]서울 한남동 ‘해천’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1분


미식가들 사이에 소문난 ‘전복의 달인’이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전복전문점 ‘해천’(02-790-2464)의 채성태(39) 대표. 중고차 사업으로 돈을 꽤 벌었던 그는 1991년 충남 태안군 마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사업하다 환멸을 느껴 섬에 눌러앉으려고 떠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섬을 찾는 이들은 사연이 많다. 그런 사정을 알았는지, ‘해녀 누님’들은 낯선 뭍 청년에게 팔지 않는 작은 전복을 나눠줬다. 화를 삭인다며 밤새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래도 취하지 않았다. 먹은 것이라곤 전복뿐인데…. 섬은 그의 인생에 전복을 선물했다. “전복이 한 사람을 살렸다.”(채 대표)

○ 주인장의 말

가장 큰 자랑거리는 상표등록까지 한 ‘해천탕’이다.

10년 전 ‘몸에 좋은 전복과 닭의 궁합을 맞춰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얀색과 재료의 미끄러운 촉감이 어울렸다. 여기에 녹각 인삼 황기 감초 같은 한약재와 대추, 밤을 듬뿍 넣었다. 손님들이 몸에 좋은 메뉴를 만들었다며 칭찬을 하고 떠났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1년 만에 망해 가게를 처분한 뒤 해천탕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제서야 진한 한약 냄새 때문에 손님들이 발길을 돌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 뒤 다시 가게를 열어 한약 성분을 줄인 새 해천탕을 내놓았다. ‘대박’이었다. 해천탕의 비밀은 재료의 모나지 않는 어우러짐에 있다. 몸에 좋은 한약이 들어가지만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하고, 닭을 쓰지만 닭 냄새가 없어야 한다. 주방을 아무리 꼼꼼히 들여다봐도 알 수 없는 맛의 또 다른 비밀은 무가 갖고 있다. 무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인다. 무는 시원한 맛을 내면서 느끼한 맛을 없앤다. 팔뚝만한 무의 윗부분을 사용하는데 다른 부분을 쓰면 탕이 싱겁거나 텁텁해진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쭉 지켜봤는데 양념은 소금만 썼다.

▽주=그것도 비비듯 조금만 뿌린다. 양념 맛이 아니라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려 주는 게 중요하다.

▽식=쫄깃쫄깃한 전복이 부드러워졌다. 씹는 맛이 그만이다.

▽주=전복, 닭, 한약재, 야채 등 재료의 균형이 중요하다. 어느 하나가 강하면 한약이나 삼계탕이 돼 버린다.

▽식=전복이 남성에게 그렇게 좋은가.

▽주=전복을 알아야 그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전복은 생김새만큼이나 수줍음이 많고 조용하고 은밀하다. 불빛도 없는 짙은 어둠이 있을 때만 움직인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둬라.(웃음)

▽식=맛의 원칙이 있다면….

▽주=‘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식당 한다’는 말이 있다. 손님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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