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법구경 말씀처럼 미움없이 살아가자꾸나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From: 문태준 시인 To: 누이동생 양희

보고 싶은 누이야, 이불을 택배로 보내 준다는 너의 문자를 받고도 얼른 답장을 하지 못했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구나. 어머니는 며칠 전에 김장을 하셨다더구나. 살얼음이 살짝 언 동치미를 찐 고구마와 함께 먹던 겨울밤을 잠시 생각했다. 구들이 쉬 식는 새벽에 오들오들 몸을 떨며 서로 이불을 끌어당겨 잠을 부르던 어릴 때 생각도 했다. 암튼 솜이불을 보내 준다니 고맙다. 벌써 너도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구나. 아이를 잘 건사하는 너를 보면 대견하단다.


[1] ‘해인으로 가는 길’(도종환 지음·문학동네)
도종환 시인이 속리산에서 지내며 숲에서 길어 올린 시상으로 가득 찬 시 60여 편이 묶인 시집.

[2] 진리의 꽃다발 법구경’(장철문 지음·아이세움)
시인 장철문 씨가 법구경 423편의 게송 중 31편을 골라 번역하고 각 게송에 얽힌 배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3] ‘관심’(성전 스님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과 자연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감동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제가 담긴 산문 모음.

우리가 (경북 김천시) 태화리 고향의 동산을 떠나온 지가 벌써 십수 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시골집 뒷마당에 서서 뒷산을 마주하면 나는 참 좋다. 눈썹 같은 초승달이 오고, 뭇별은 무수히 쏟아지고…. 눈이 푹푹 내리는 것을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일은 또 얼마나 좋은지. 눈을 쓸어 길을 내다 어느새 저녁이 오면 큰 잘못 없이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더욱 좋다.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겠니?

도종환 시인의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을 다시 읽었다. ‘산경’이라는 시는 읽을 때마다 마음에 쏙 들더라.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산도 똑같이 아무 말도 안 했다/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수월하게 무던하게 살기도 어려운 시절인 성싶다.

누이야, 나는 가끔 고등학교 다닐 때가 생각난다. 작은 고민이라도 할라치면 희숙 누나와 귀희 누나가 뜨락에 함께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주었지. 내가 누나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너나 춘희에게 다 물려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한 적이 사실은 많단다. ‘진리의 꽃다발 법구경’이라는 책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사꺄족과 꼴리야족은 로히니 강을 사이에 두고 살았다고 한다. 어느 해에는 가뭄이 들어 강물이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두 부족은 강물을 먼저 끌어다 농사를 지으려고 했겠지. 우리 동네에서도 물꼬를 막고 트는 일로 물싸움이 숱하게 있었잖니? 급기야 이 두 부족은 전쟁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부처가 나섰겠지. “증오 때문에 서로 싸우려 하지만 증오는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을 불러올 뿐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피로 강물을 이루려 하십니까?”라고 부처는 말했다는구나. 누이야, 살다 보면 왜 속상한 일이 없겠니? 그러나, 미움 속에서 미움 없이, 미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 속에서 미움 없이 살아가자. 아버지가 늘 당부하셨듯이 남의 말 하지 않고서.

내가 가까이 모시는 성전 스님이라는 분이 있다. 늘 소년처럼 웃으시니 ‘미소의 전도사’쯤 된다고 할까. 내가 스님에게 여쭤 보았단다. “스님은 어디서 웃음이 나옵니까?”라고. 그랬더니 스님은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시더구나. 이 말은 우리가 어머니에게 밥상머리에서 숱하게 들었던 말이잖니? 스님은 섭섭한 일이 생겨도 “이만하면 다행이다”라고 하신다는 거다. 성전 스님이 쓴 ‘관심’이라는 책을 소포로 보내 줄 테니 이따금씩 펼쳐 읽어 보렴.

부디 옷 따뜻하게 입어라. 바깥이 춥다. 매제에게도 그리고 영우와 유경이에게도 안부 전하렴. 늦게까지 일하는 매제 몸 축날까 걱정이다. 보고 싶은 누이 양희에게 오빠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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