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생각한 말을 천편일률이라고 평가하면 당사자는 매우 곤혹스럽다. 학생들은 12년간 그 많은 지식을 배우고도 ‘자기 생각’을 담지 못해 애를 먹는다. 구술시험은 뱉은 말을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막막해도 답은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담긴 독창성을 어떻게 퍼 올릴까.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낫을 보거든 기역자를 떠올리고, 구슬이 서 말이거든 꿰어 보라. 구체적 사물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주저 없이 따라갈 때 나만의 오솔길이 생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실타래로 꿰면 멋진 목걸이가 만들어질 테니까.
매일 겪으며 사는 세상에서 또 다른 의미를 꿰는 법은 바로 신화에서 배울 수 있다. 옛사람들은 ‘사과’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가 먹은 사과는 인간에게 선악의 판단을 주었고, 고대 도시 트로이는 (파리스 왕자와 헬레네 왕비의 사랑 이전에) 황금사과 때문에 그리스 영웅들과 일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사과는 인간의 이성과 욕망을 이해하는 아이콘이다.
신화 속 상징은 벌판의 바람처럼 상상의 자유를 허용한다. 사람들은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카로스는 양초 날개를 달고 올라갔다가 추락했지만, 벨레로폰은 날개를 단 말(페가수스)을 타고 자유롭게 비상했다. 신라인들도 날아다니는 하얀 말을 천마총에 그려 놓았다. 신화 속엔 자유로움과 격려사가 모두 녹아 있다.
신화는 또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멋진 관문이다. 우리가 매일 보는 나무 속에도 신성한 곳과 이어진 길이 숨어 있다. 북유럽 신화의 ‘이그드라실’, 단군 신화의 ‘신단수’는 모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거대한 우주나무다. 길가의 솟대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도 마찬가지다. 우주로 가는 비밀문이 보인다면 새로운 ‘눈’까지 얻은 셈이다.
모양새에 관한 환상적인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도 신화의 비슈누는 악마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10가지 모습으로 변한다. 비슈누가 변신한 ‘아바타’들은 오늘날에도 사이버 공간에서 맹활약 중이다. 반면 동양의 ‘용’은 변신보다 종합을 택했다. 사슴의 뿔, 뱀의 목, 독수리 발 등 무려 9가지 동물을 섞은 결과다. 신비한 존재를 통해 자연의 한계를 넘고 싶었던 인류의 마음이 읽힌다.
무엇보다 신화는 아직도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우리는 종종 음료의 신 ‘박카스’를 마시고, 미의 여신 ‘비너스’를 갈아입는다. 5월 축제를 상징하는 막대인 ‘메이폴’을 걸치고, 얼굴에는 인도의 여신 ‘칼리’를 바른다. 드라마 ‘주몽’이나 영화 ‘반지의 제왕’도 신화의 서사구조 덕분에 생동감을 얻었다.
생각이 막혀서 갑갑할 때 무엇보다 신화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을 따라가며 꿈틀거리는 세상을 느껴 보자. 마음속 우물에서 뽑아 올린 소박한 생각, 구술은 바로 그것을 반길 것이다.
권 희 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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