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도 감탄한 ‘절대 음감’…앨범 낸 클래식 작곡가 정예경

  • 입력 2006년 12월 11일 20시 26분


전영한기자
전영한기자

▲정예경_Cocktail Tale

8일 만나자마자 그녀가 내민 A4 용지 5장은 일종의 '기선제압'용이었다. 40개가 넘는 경력 사항과 과거 이야기들은 읽기에도 숨찼다. 마치 A4 용지 수십 장 분량의 이야기가 더 숨어있는 듯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그녀, 스물세 살 뮤지션 정예경이 궁금하다.

"아빠가 엄마 뱃속에 있는 제게 절대음감을 심어주신다며 피아노 조율로 태교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작곡가가 되고 싶었나 봐요. 그 꿈은 11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MBC 창작동요제에서 처음 이루어졌죠."

1995년 정 씨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대상'보다 '작곡'이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그녀는 13세의 나이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란 노래를 직접 만들어 대상을 수상한 것. 그 후 서울예고 작곡과에 수석으로 입학, 3년 연속 전공 실기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대 작곡과에도 수석으로 진학 했다. 서울체신청 주최 사랑나누기 편지대회에서 93만명 중 1등을 차지하는 등 글짓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성균관대 영재교육연구소에서는 그녀를 '대한민국 대표영재 50인'으로 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소프라노 조수미 씨와의 만남이었다. 해외 공연을 앞둔 조수미가 '아리아리랑'의 오케스트라 악보를 통째로 잃어버렸고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원본 악보를 받기까지는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는 것. 조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기타리스트 장승호 씨에게 소식을 알렸고 장 씨는 평소 음감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한 고등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어"라는 말에 18세 소녀 정예경은 흥미를 느꼈다.

"5시간 만에 악보를 그렸는데 낱장으로 드리려니 이상해서 70만원짜리 제본기를 사서 아예 제본까지 했죠. 악보를 받은 조수미 씨가 공연이 끝나고 제게 이메일을 보내 '넌 정말 기프티드(gifted)된 아이야'라며 칭찬해주셨는데 어찌나 기쁘던지…"

이후 그녀는 5년 째 조수미의 공연 편곡을 담당해왔으며 비발디의 '사계' 연주로 유명한 '이무지치' 실내악단의 편곡도 한국인 최초로 도맡았다. 비범한 이력을 읊다보니 자연스레 "천재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아빠가 사설 영재교육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특별한 영재 교육을 받은 건 없어요. 대신 전 한 번 좋아하면 끝을 봐요. 작곡도 1%의 영감과 99%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수학자 출신인 아빠는 늘 '넌 수학 못해도 음악만 잘 하면 돼'라며 저를 존중해주셨죠,"

영재, 천재 소리 듣던 그녀는 느지막하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정예경 1집' 음반. 그것이다. 클래식과 가요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담은 이 앨범에서 그녀는 수록된 11곡의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맡았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만 해오던 그녀에게 대중음악은 도전이자 무모한 실험일 수 있다.

"교수님들이 걱정하세요. 4,5분밖에 안 되는 가요를 만들면 나중에 20분 이상 긴 호흡의 클래식을 만들지 못할까봐. 하지만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시가 내게로 왔다'라고 한다면 전 '음악이 네게로 왔다'인 것 같아요. 클래식이든 가요든 똑같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잖아요."

그녀의 좌우명은 '꿈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되자'다. 중 3때 공연 '탱고 포에버'를 보기 위해 무작정 예술의 전당에 갔던 일, 대학생 때 뮤지컬에 빠져 무작정 미국 브로드웨이로 떠났던 일 등 '천재' 이전에 그녀를 만든 것은 바로 '열정'이었다. 그러나 인터뷰 말미 "음악 말고 뭘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시무룩해졌다.

"음악 말고 좋아하는 게 없어요. 남자요? 소개팅을 태어나서 딱 한 번 해봤는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나간 거예요. 그 때 만난 남자애랑은 친구로 지내는데 제 앨범도 돈 주고 샀대요. 공짜로 주긴요~ 저도 먹고 살아야죠…"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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