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김성기(45·사진)는 양파 수프와 샐러드를 주문하며 말했다. 좀 여위어 보였다. 그는 “5kg쯤 빠졌다”고 했다.
그에게 올해는 악몽 같은 해였다. 올여름 공연계의 최대 화제작이었던 국내 초연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그는 가장 중요한 배역인 ‘엔지니어’에 뽑혔다. 오디션을 위해 내한했던 영국 연출팀에서 “엔지니어 역을 하기 위해 태어난 배우”라는 찬사를 들었다.
15년간의 무명 생활 끝에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미우라 역을 열연해 뮤지컬계의 스타가 된 그에게 이 대형 뮤지컬을 이끌어가는 사실상의 주인공 ‘엔지니어’는 일생일대의 배역이었다.
하지만 6월 22일, 공연을 불과 엿새 앞두고 쓰러졌다.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 연습실에서 곧장 병원으로 옮겨져 바로 뇌수술을 받아야 했을 만큼 위급했다.
아직도 날씨가 추우면 몸이 약간 저리다는 그는 열심히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쓰러진 지 6개월 만에 마침내 그는 재기의 첫 무대를 펼친다. 그토록 원하던 ‘엔지니어’ 역으로. 내년 1월 23일∼2월 25일 ‘미스 사이공’ 대구 공연을 위해 그는 28일부터 연습을 다시 시작한다.
얼마 전 그는 다시 내한한 영국 스태프 앞에서 대구 공연을 앞두고 목소리 상태를 점검(?)받았다. 그가 노래를 끝냈을 때, 영국인 스태프는 눈물을 쏟았다. “얼음을 깨뜨리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AP통신 리뷰), “훔쳐다가 쓰고 싶은 멋진 목소리”(배우 조승우)는 변함없었다.
“배우에겐 조명이 마약이나 다름없지요. 무대 위에서 몸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뜨거운 조명을 다시 느낄 수 있다니 너무 설렙니다. 제가 부르는 엔지니어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난 다시 부활한 엔지니어∼.’ 정말 제가 그런 것 같아요.”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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