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학계에서는 이들 지역이 유교문화권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서구자본주의를 추동한 이념으로 설명한 막스 베버에 빗대어 이를 ‘유교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최근 번역된 일본 역사인구학의 대가 하야미 아키라(速水融·사진) 레이타쿠대 명예교수의 ‘근세일본의 경제발전과 근면혁명’(혜안)은 이들 지역의 또 다른 특징을 포착해낸다. 바로 논농사다.
이 책은 일본인의 근면성을 민족성에서 찾는 종래의 분석을 비판한다. 대신 도쿠가와(德川) 막부 시절 좁은 땅에서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논농사 등 노동집약형 농업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하야미 교수는 일본 중동부 노비(濃尾)지역의 농촌인구와 가축 변천사를 추적한 결과 인구는 대폭 늘어난 반면 가축(주로 말)은 오히려 절반 이하로 격감한 것을 발견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일본 인구는 1000만 명에서 3500만 명으로 3.5배, 경지 면적은 2배, 곡물 생산량은 4배 증가했다. 따라서 일본 농민들이 좁은 논에 가축보다 사람을 투입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노동집약적 전략을 선택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에 농민들이 전국시대의 노예적 상황에서 벗어남에 따라 한 쌍의 부부를 단위로 해서 노동 수요의 계절적 변동에 가장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족 노동력을 이용하는 소농경영이 각광받게 됐다는 것이다. 하야미 교수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이전 노동가치에 눈을 뜨게 된 이런 현상을 근면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논농사를 일본에 수출한 한국에서도 근면혁명이 존재했을까. 자본주의 맹아론자든 식민지근대화론자든 국내 학계가 답할 부분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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