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려보고 마주 앉은 두 개그맨의 얼굴에 긴장이 감돈다. 진행자 김준호가 “벌칙을 정하겠다”고 하자, 한 개그맨이 “밀가루!”라고 말한다. 맞은편에 앉은 개그맨도 이를 맞받아 “올인!(다 집어넣어라)”이라고 외친다. 주문에 따라 두 개그맨의 얼굴을 향한 파이프 속으로 밀가루 김가루 생크림 등이 들어간다. 게임은 두 개그맨 중 먼저 웃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네 명의 개그맨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겨룬 뒤 마지막 승자가 ‘타짱’으로 불리고 진 사람은 밀가루 김가루 등을 뒤집어쓴다.》
KBS2 코미디프로그램 ‘웃음충전소’(수요일 오후 8시 55분) ‘타짱’의 한 장면이다. 개그맨끼리 ‘웃기는 게임’을 벌이는 이 코너는 시작한 지 3주 만에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며 관심을 얻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오랜만에 보는 나 같은 구세대를 위한 코미디”(주형술) “보다가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났다”(김진호) 등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코너의 진행자인 김준호와 4주째 ‘타짱’ 자리를 지킨 양배추(본명 조세호)를 11일 KBS 본관 ‘웃음충전소’ 녹화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김준호는 “PD와 ‘웃음 참기 게임’을 기획했는데 영화 ‘타짜’가 주는 도박의 긴장감과 2005년 끝난 MBC ‘코미디하우스’의 ‘알까기’ ‘웃지마’ 코너를 참조해 만들었다”며 “개그맨이 개그맨을 웃기면 방송에선 대박이 난다”고 말했다. 양배추는 “보통 시청자는 1초 만에 확실히 웃길 수 있다”고 말했다.
‘타짱’의 특징은 대사 없이 몸 표정 소품을 이용해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과 웃음 전문가들끼리의 웃기기 게임이라는 점이다.
‘웃음충전소’의 김석현 PD는 “말로 웃기는 공개방송 형식의 스탠딩 개그 코미디를 이해하기 어려운 장년층이나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준호는 “‘타짱’은 몸으로 웃음을 주는 복고풍 코미디라는 점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양배추는 그동안 개그맨들의 회식에 부처나 돼지머리 탈을 쓰고 나가서 웃기다가 김준호의 권유로 이 코너에 합류했다.
그는 “1년 전 남희석 선배가 일본에서 ‘언제든 네게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권유해 샀던 탈”이라며 “이렇게 활용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준호는 1996년 SBS 공채로 입사해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집으로’에서 할머니 역을 열연해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겐 정종철의 ‘옥동자’나 박준형의 ‘갈갈이’처럼 김준호 하면 딱 떠오르는 타이틀이 없다.
김준호는 “이번 역할도 그렇지만 심심한 캐릭터가 많아 그런 것 같다”며 “스타보다 오랫 동안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01년 데뷔한 양배추는 2004년 ‘개콘’의 ‘봉숭아 학당’에서 ‘대신맨’으로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이 뜸했다.
그는 “다른 기회를 찾기 위해 ‘개콘’을 떠났지만 그 후 인기와 관심이 허무하게 사라졌다”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타짱’에서 재기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PD는 두 사람에 대해 “양배추는 끼로 뭉쳐 있고, 김준호는 자신보다 다른 개그맨이 돋보이도록 받쳐 주는 재능이 탁월하다”며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묻혀진 끼와 능력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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