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만화책을 보고 싶어 하는 걸 알고는 어린이날 보자기에 싼 만화책을 한보따리 건네주던 아버지. ‘나그네’의 시인 박목월(1916∼1978)은 그만큼 다감한 부친이었다.
박 시인의 장남 박동규(67)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 ‘아버지와 아들’(대산출판사)을 냈다. 박 시인이 가끔 부친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긴 했지만 한데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은 처음이다.
아들이 묘사하는 아버지는 따뜻하고 자애롭다. 식사를 하려고 가족이 모이면 자식들 머리를 다 쓰다듬고 나서야 식사를 했다. 돈이 없는 아버지는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서커스 천막 주변만 돌다가 개구멍을 발견해 아들만 들여보낸 뒤 경비원에게 잡힐 것을 걱정해 그 앞에 내내 지키고 서 있었다.
한편으로 정갈한 시인이기도 했다. 산문은 만년필로 썼지만 시는 꼭 연필을 깎아 썼다. 아버지는 “연필을 깎으며 마음을 가다듬게 되지. 어떻게 마음가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열리는 거야”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아들이 보여 준 학술 논문을 새빨갛게 수정해 돌려줄 정도로 엄격했지만 아버지는 인정도 많았고 품도 넉넉했다. 집을 털려다 붙잡힌 도둑을 앉혀 두고 네 시간을 얘기한 뒤 돈을 쥐여주며 그냥 돌려보냈다. “사정을 들어 보니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왔다더라”는 것.
책에는 아버지의 산문에서 아들이 직접 고른 21편도 함께 묶었다. 박 교수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식 사랑의 원형을 나와 아버지 사이에서 밝혀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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