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올해의 책 10… 동아일보 선정

  • 입력 2006년 12월 16일 03시 00분


《올해, 어떤 책을 읽으셨습니까. 또 한 해가 지려고 합니다.

숨 헐떡이며 앞만 보고 달려온 한 해, 곤고하고 쳇바퀴처럼 돌았던 일상들, 외롭고 고독할 때 그래도 영혼을 울린 한 권의 책이 있어 위로가 됐습니다.

이달 초까지 올 한 해 국내에서는 4만1000여 종의 새 책(참고서, 학습지 제외)이 나왔습니다.

많은 책 속에는 갈피마다 만든 이의 노력과 헌신이 배어 있습니다.

동아일보 ‘책의 향기’팀은 각 분야 전문가, 출판인 등 30명의 도움으로 ‘2006년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했습니다.

심사 대상은 2005년 12월 10일∼2006년 12월 2일 ‘책의 향기’에 실린 책을 비롯해 완성도와 독자의 반응을 검토해 후보로 올린 167권입니다.

본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을 소개합니다. 》

작고 낮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가재미’에서)

최근 2년 새 굵직한 문학상을 휩쓴 시인 문태준(36) 씨. 7월 나온 문 시인의 새 시집 ‘가재미’에는 2006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그맘때에는’, 2005년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힌 ‘가재미’ 등 일찌감치 이름을 알린 시편들이 실렸다. 이뿐 아니다. 시집에 묶인 67편이 하나하나 공들여 빚어진 작품이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극빈’에서) 같은 섬세한 시구를 통해, 시인은 바삐 살아가는 우리가 무심했던 작고 낮은 것들의 존재감을 일깨운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위력을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알린 이 책은 신작 시집으로선 드물게 1만 부 이상 나갔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자선의 길로 인도

‘빈곤의 종말’은 시장 만능주의 대신 약자에 대한 연대와 배려가 살아있는 경제학 책이다. 저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경제특별자문관으로 활동했고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유엔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입안했던 미국 경제학자. 이 책에서 저자는 제3세계의 가난을 면밀히 분석하고 세계 인구의 6분의 1가량이 극단적 빈곤에 처해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대안을 제시했다.

올해 미국의 부자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연이은 자선과 선행은 모두 이 책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회장은 지난해 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만났을 때 이 책을 필독서로 추천했다. 또 저자는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케냐에 갔을 때 동행했고, 팝가수 마돈나가 말라위의 고아를 입양할 때는 소아과 의사인 저자의 아내가 동행했다.

실제 성공 사례를 열거해 가며 세계의 치유를 역설하는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면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믿고 싶어진다.

죽음 앞에서 삶의 진실에 눈뜨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호스피스 운동에 앞장섰던 저명한 정신의학자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직접 만난 경험을 토대로 쓴 ‘인생수업’이 던지는 메시지다. 6개월 전 출판됐지만 이번 주에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내용으로도 20, 30대 독자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그러나 표지와 본문 삽화 디자인을 놓고 표절 논란이 일었고, 급기야 출판사는 표지와 삽화를 모두 바꾼 뒤 책을 새로 펴냈다.

다산에게 배우는 지식 재창조 비법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다산 정약용의 작업에 대해 ‘what(무엇을)’이 아니라 ‘how(어떻게)’에 초점을 맞춘 책. 저자는 18세기 급속하게 증가하는 지식을 편집하여 가치를 재창조해 낸 것이 다산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다산의 정보 처리 방식을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묶어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 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 등 50가지 방법으로 정리했다. 효율적인 지식 경영과 작업 방식으로 최고경영자(CEO)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출간 보름 만에 2만1000여 부가 팔렸다.

시장논리 앞세운 신자유주의 비판

‘국가의 역할’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서이자 그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저자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일관되게 주목하는 것은 ‘통제 불능’의 시장과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국가의 개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80년대 개발도상국이 추진한 ‘수입대체산업화’나 한국 대만 일본을 관통한 ‘동아시아 모델’에서 신자유주의 대안을 찾고 있다. 저자는 이를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이라고 명명했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실패한 국가주의의

한국전통과학에 대한 색다른 주장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역사 과학기행’에서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아니라 2층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것’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닌 상징적 구조물’ 등 색다른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첨성대 석굴암 금속활자 등 한국전통과학의 결과물은 당대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이를 무시하고 서구과학의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반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으나 파격적 내용 때문에 일부 역사 교사는 추천을 꺼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음식만 바꿔도 세상을 구할수있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인류학자 제인 구달 박사가 제안하는 식문화를 소개한 ‘희망의 밥상’. 저자는 재정 수익 때문에 많은 화학 약품을 사용하는 현대사회의 음식이 인간에게 초래하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분석한 뒤 유기농 식품과 고향의 전통 음식 먹기를 권한다. 유기농 식품이 대기업의 대량 생산 식품보다 비싸기는 하지만 건강을 해친 뒤 치료에 들어갈 의료비를 감안하면 결국은 싼 편이라는 것. 식품에 대한 소비자 개인의 생각과 태도가 변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해전사’ 재인식… 논쟁 중심에 서다

386세대의 근현대사 인식에 영향을 끼친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극복을 선언해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그래서 제목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이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촉구한 탓에 출간 이후 숱한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이런 이유로 2권 분량의 두툼한 학술서임에도 불구하고 2월 출간 이후 10개월간 4쇄나 인쇄되며 1만8000여 질이 팔렸다. 인식과 재인식을 모두 비판하며 지난달 말에 출간된 ‘근대를 다시 읽는다’도 올해의 책 선정위원들의 추천을 많이 받았다.

결혼의 통념을 깬 ‘황당 시추에이션’

‘아내가 결혼했다’는 제목 그대로 기발한 소재로 선정 과정에서 일찌감치 화제작으로 꼽힌 장편소설. ‘아내가…’는 결혼은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또’ 생겼으니 중혼(重婚)을 하겠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날실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비유할 만한 축구 자료를 씨실로 엮은 소설. 결혼의 통념에 반발하는 문제의식에 잘 읽히는 문체가 더해지면서 ‘황당 시추에이션’은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3월 출간된 이 소설은 17만여 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사 10여 곳이 판권을 사겠다고 앞 다투어 달려들었다.

역사책이 놓친 사생활의 사회-문화사

전체 5부작인 ‘사생활의 역사’ 중 2002년 번역되지 못한 2권, 5권이 최근 나와 완역됐다. 출판사에 따르면 출간 2주 만에 재판을 찍었고, 세트 주문도 1000질을 넘어섰다.

공식 기록의 역사가 포착하기 어려운 사생활의 사회사와 문화사를 교직하면서 풍성한 도판을 곁들인 편집이 독자의 시선을 끈 것으로 분석된다. 이 책의 책임편집자인 조르주 뒤비가 엮은 ‘지도로 보는 세계사’도 12만 원의 고가임에도 1주일 만에 1300부가 팔려 프랑스 아날학파의 저력을 과시했다.

<책의 향기팀>

■ 추천해 주신 분들 (가나다순)

※본인이 집필하거나 출판한 책을 제외한 올해 출간도서 중 10권씩 추천.

구본형(변화경영전문가) 김기봉(경기대 교수·역사학) 김인호(바다출판사 대표) 김학원(휴머니스트 대표) 김형찬(고려대 교수·철학) 김희교(광운대 교수·중국사) 방민호(서울대 교수·국문학)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성석제(작가)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 윤성희(작가) 이권우(도서평론가) 이동우(북세미나 대표) 이명옥(사비나미술관 관장) 이문재(시인·도서평론가) 이은희(과학칼럼니스트) 장석만(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종교학) 장석주(작가) 장은수(민음사 대표)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이현(작가)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교수·물리학) 조원희(국민대 교수·경제학) 최재천(이화여대 교수·생물학) 한기호(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성봉(도서출판 동아시아 대표)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함인희(이화여대 교수·사회학) 허병두(‘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대표) 홍성욱(서울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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