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7년 日어린이들 포켓몬스터 발작

  • 입력 2006년 12월 16일 03시 00분


‘사이버 공간에 살고 있다는 새로운 포켓몬스터를 찾아 컴퓨터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피카추. 그러나 시스템에 투입된 백신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 피카추는 전기 공격으로 맞섰다. 그러자 녹색과 빨간색의 강렬한 빛이 수초간 터져 나왔다.’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38번째 에피소드인 ‘전능전사 포리곤’의 한 장면. 이 에피소드는 1997년 12월 16일 일본에서 TV로 방영됐다. 새로운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애타게 기다려온 어린이 팬들은 방영 시간에 맞춰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포리곤 에피소드가 시작된 지 2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빨간색 섬광(閃光) 장면이 나오자 TV를 지켜보던 많은 아이들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일부는 두통과 구토 증세를 호소했다.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의식을 잃은 어린이도 있었다.

일본의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이날 685명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이들 가운데 150여 명은 병원에 입원했다. 2명은 2주 이상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일본의 과학자와 방송 관계자들은 섬광 이미지가 ‘광(光) 과민성 발작’을 일으키게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발작’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이렇게 분석했다.

‘어린이들이 지나치게 TV 프로그램에 몰입했다. 앞에서 폭탄이 터지는 효과를 주는 장면이 나올 때 TV에 착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4000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이런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처럼 대규모로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포리곤 사건이 일어난 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4개월간 방영이 중단됐다. 과학자와 방송 관계자들은 애니메이션 제작 가이드라인도 내놓았다.

‘특히 빨간색 섬광 이미지는 1초에 3번 이상 깜박여서는 안 된다. 섬광 이미지는 2초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

포리곤 사건은 이후 방영된 다른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사히TV는 ‘강철 천사 쿠루미’라는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면서 다음과 같은 오프닝 자막을 내보냈다. TV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게임 등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는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지켜야 할 아주 간단한 원칙이다.

‘TV를 볼 때는 방을 환하게 하고 멀리 떨어져서 보십시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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