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사든 독설이든 책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의 책만큼이나 많다. 인류에게 책만큼 귀중한 유산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북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책의 기억’ 전도 이처럼 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전시다.
책을 주제로 만든 미술 작품을 30여 점 선보이는 행사로 고영훈 한만영 홍경택 강애란 박지숙 이흥덕 최은경 노주환 정평환 씨 등 오랫동안 책을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 19명이 참가한다. 도서출판 한길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마련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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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훈 씨는 ‘21세기의 기억’에서 극사실 기법으로 대형 책을 그린 뒤 그 위에 콜라주로 문자를 붙였으며 가운데에는 타이프라이터와 돌을 그려 넣었다. 그는 “책은 문명과 역사의 축적이자 상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며 “가운데 있는 돌은 자연의 상징으로 문명(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만영 씨는 미니멀리즘 회화 ‘reproduction of time-hunt’로 시공간을 관류하는 책의 의미를 표현했다. 검은색과 은색이 대비되는 평면 가운데 책을 오브제로 놓았다. 그는 “책은 기록이고, 기록되는 것은 모두 과거이지만 그것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다”며 “책은 과거와 미래,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상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했다.
납활자를 이용한 노주환 씨의 조각 ‘꽃’은 활자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납활자로 두꺼운 책의 형상을 만든 뒤 그 속에 김춘수 시인의 ‘꽃’을 활자로 표현했다. 노 씨는 “책은 지혜의 전달 매체”라고 말했다.
팝아트 계열의 작품을 추구해 온 작가 홍경택 씨는 책을 자기만의 사적 공간을 보장하는 매체로 해석한다. 전시작 ‘서재3’은 수십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작가가 수집해 온 인형이나 동물의 두개골 같은 것을 잔뜩 쌓아둔 그림이다. 그는 “책을 통해 은밀한 나만의 성을 만든다”며 “나만의 공간인 그곳에서 난 왕이 된다”고 말했다.
설치 조각 ‘용서’를 내놓은 최은경 씨는 ‘책의 파괴’를 주장한 적이 있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이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만 올라가면 탐욕스럽고 잔혹해지는 세태를 비판했던 것. 그는 “책을 파괴하자는 주장은 책을 제대로 이해해 올바른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자는 반어법”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1일∼2007년 1월 28일. 031-955-2039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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