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그리스도 향기를 품은 사람

  • 입력 2006년 12월 21일 03시 01분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성서의 이 구절을 묵상할 때마다 20년 전 교정사목 전담 수녀로 일할 때 알게 된 레지오 단장 ‘로사’ 자매를 떠올린다.

로사 자매는 남편의 반대로 몰래 성당에 나가 세례를 받고 오랫동안 어렵게 신앙생활을 했다. 남편이 집에 있는 주일에는 “신발을 사왔는데 작아서 바꾸러 시장에 다녀와야겠어요” 등 구실을 대고 주일미사를 다녔다. 남편은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내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 이유가 신앙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감동한 남편은 ‘시몬’이라는 세례명으로 역시 천주교 신자가 됐다. 이후 부부가 함께 성당에 다니며 성서 공부도 하고 레지오 단원으로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나를 급하게 찾는 전화를 받았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고아 청년이 대낮에 남의 집 담을 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병원에 실려 왔고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돌봐줄 가족도 없는 청년의 딱한 사정을 로사 자매에게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로사 씨 부부는 물론 레지오 단원들이 교대로 방문해 환자를 돌봐주었다. 직계 가족이 아니라고 면회를 거절당할 때면 로사 자매는 측은지심에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참 이상한 아줌마 다 보겠네’라고 생각하던 직원들도 굽힐 줄 모르는 사랑에 감화돼 면회를 허락했다.

재판을 거쳐 교도소로 가게 될 그 형제는 부부가 재판장을 찾아가 탄원한 덕분에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충북 음성 꽃동네에 거처를 마련했다. 퇴원하는 날 그를 친아들처럼 돌보던 많은 봉사자와 간호사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몇 해 전 로사 자매를 다시 만났다. 큰 수술을 받고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일상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었다. 로사 자매를 기억하며 “주님은 인간의 자선 행위를 옥새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인간의 선행을 당신의 눈동자처럼 아끼신다”(집회서 17장 22절)는 성경 말씀을 떠올려 본다. “로사 자매 건강하세요.”

최남순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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