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위기는 전 세대로 확산되는 추세다. 동덕여대 한국여성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남녀 2767명 가운데 12.2%가 '자녀를 낳을 필요는 없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37.4%가 '부부만의 애정으로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혈연관계보다 강력한 공동체 단위는 없다. 하지만 돈은 강력한 혈연관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돈을 우위로 한 가치관의 밑바닥에는 거리낌 없이 겉으로 드러내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진행된 '민주화'나 '세계화'가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에는 권력이나 권위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가치였지만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자리 잡았다. 또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명분이나 체면을 초월한 실용주의화가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수직적인 상하 관계도 무너지면서 행동기준이 실용주의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 체면, 명분, 공동체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욕망을 무장해제한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 욕망의 지도'라는 책을 통해 한국인이 스스로 욕망을 가진 존재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욕망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고 진단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졌다. 한국인은 이제 욕망하는 인간이란 의미의 '호모 데시데로(Homo Desidero)'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욕망의 실현수단인 돈이 종종 혈연의 정리마저 넘어서는 일이 생기게 됐다. 과거에는 내면에 돈에 대한 욕망이 있더라도 체면이나 공동체 의식 때문에 내 놓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욕망에 솔직해졌고, 돈의 가치가 부모-자식간의 혈연관계 조차 실용주의적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이런 실용주의의 결론은 돈에 의한 타락일 될 것인가. 그럴 여지도 있지만 가족 간의 '기대 수준'을 서로 낮춤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 가족은 혈연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기대하거나 감당하지 않으며, 돈에 대한 채무-권리 의식이 줄어드는 관계로 변모되어 갈 것이다.
김경훈(한국트렌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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