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분과 고통 속에서 ‘울분의 서’로 불리는 ‘사기’를 저술했다.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이 저술은 중국 고대문명사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세계사이다. 본기와 열전을 중심축으로 하는 기전체라는 역사서술 방법을 창안하고 공자가 저술한 역사서 ‘춘추’의 정신을 춘추필법으로 이어받았다. 궁형의 치욕을 씻어 내는 자기 승화의 제의이자 아버지 사마담의 유업을 계승하는 작업이었다.
시시비비 정신과 정통론은 춘추필법의 핵심이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가름하는 역사의식과 어떤 국가나 정권, 개인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따지는 역사적 평가 작업을 의미한다. 역사는 윤리서의 구실까지 떠맡았고 ‘역사에 남을 인물’이라든가 ‘청사에 길이 빛난다’는 말은 칭찬이고 ‘훗날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는 말로 민감하고 골치 아픈 일을 역사에 떠넘기는 일까지 흔해졌다.
左도 右도 균형감각 잃고 분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역사 논쟁은 한계 수위를 넘었다. 과거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실 확인과 당사자는 물론 후손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배려는 당연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성급한 조치는 부작용을 낳는다. 더구나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조선시대에도 양 난(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충신열사에 대한 국가적 현창사업에 2세기가 걸렸다.
친일파 문제는 더욱 정밀한 조사 과정과 분류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나라를 송두리째 내주거나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모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한 부일파(附日派),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친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생존형 친일파, 겉으로는 친일로 가장하면서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하거나 독립운동자금을 댄 양친일·음독립파(陽親日·陰獨立派), 자기도 모르게 일제 논리에 말려들었거나 식민사관에 물들게 된 소극적 친일파를 가려내는 작업이 선행되고 응분의 처사를 하지 않는 한 ‘억울하다’ 또는 ‘지나치다’는 뒷말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뉴라이트 교과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4·19나 5·16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의 기존 교과서 서술을 운동사적 시각으로 규정하고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시안을 조급하게 만들어 심포지엄을 열다가 4·19 관련 단체 회원의 폭력을 불렀다. 기존 교과서를 뒤집으려는 의도가 지나쳐 같은 뉴라이트 계열에서조차 지지를 못 받고 맹렬한 반발에 부닥쳤다.
이들의 주장은 현실론적 관점에 서 있다. 이른바 일제 근대화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연장선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민주화나 인권 문제, 국민의 자존심과 같은 가치에 대한 그들의 맹목적 역사인식이 함정이 될 수밖에 없다.
좌우 이념 싸움에서 역사는 도구로 전락했다. 좌파적 시각이든 우파적 시각이든 균형 감각을 잃고 편협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모든 역사적 사실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인데 흑백논리가 역사적 평가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역사의 거울 앞에 겸허한 성찰을
태평양전쟁 등에 대한 자기반성을 자학사관이라며 합리화 내지 미화하며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과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제국주의를 자행하는 중국의 틈새에서 자기 역사에 대한 지나친 부정과 지나친 긍정 사이에서 분열에 빠진 우리의 실정은 딱하기 그지없다.
역사는 동네북이 아니다. 뼈를 깎는 자기성찰이 없는 역사 정리 작업이나 역사 논쟁은 공허하다. 역사는 자기를 비춰 보는 거울이라고 했다. 이 해도 저물고 있는데 역사라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며 역사 앞에서 우리 모두 정직하고 겸손해졌으면 싶다. 새해에는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에 허무한 마음까지 드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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