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아직도 개선과 진화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데 다만 우리가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모든 여건이 좋아진 지금이 바로 그 기회를 다시 잡을 호기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맞는 건축이 만들어질 수 있다.”》
서양식 건축 교육을 받은 저자는 한옥 공사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마당을 가득 채운 흙더미가 모두 지붕에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옥을 해체해 보면 서까래를 포함한 지붕 목구조의 상당 부분이 썩어 있다. 습기를 머금은 흙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옥은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서울 북촌을 중심으로 한옥이 유행처럼 번져 가는 시대에 이게 웬 말인가. 그러나 이 말은 한옥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르다. 저자는 한옥의 기본 기능과 내구성 등 경쟁에서 완패한 미학 외적 요인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한옥을 표준화가 가능한 현대 건축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북촌에서 직접 다섯 채의 현대 한옥을 지었던 저자의 경험이 책의 바탕이 됐다. 현대식 주방과 욕실을 마련하고 지하에 홈시어터를 만드는 등 한옥을 현대적 용도와 결합해 지은 실제 경험과 한옥 사진이 풍성하게 실렸다. 건축 경험담과 한옥의 역사, 건축 일반론을 수시로 오가는 설명도 읽는 이를 배부르게 한다.
한국 건축가들도 교육 과정에서 한옥 자체에 대해서는 깊게 배우지 않는 탓에 저자에게 한옥 중건은 새롭게 열린 미지의 세계였다.
새로 만난 세계에서 저자가 이상하게 여겼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습기에 취약한 구조도 그렇거니와 한옥을 짓는 사람들의 목재에 대한 과도한 관심도 저자를 뜨악하게 했다. 저자는 “한옥을 이야기하면서 유독 재료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건축에 담긴 사람의 생각, 즉 공간 비례 시선 프로그램 디테일에 이르는 나머지 내용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한옥을 지어 온 ‘장인의 세계’는 미화와 칭송의 대상이 아니라 발전을 위해 벗어나야 할 낡은 틀이다.
도면을 경시하는 태도 역시 한옥의 발전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도면이란 “좁게는 집을 짓기 위한 정보 전달 수단이지만 넓게 보면 만드는 사람의 사고 표현이자 기록, 나아가 세계를 보는 시각을 담은 일종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옥의 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조선시대 때 이미 시작됐다고 소개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한옥의 빗물 처리, 답답한 안마당, 배수 문제, 통풍, 화재, 사생활 결여를 지적하며 척도의 통일을 역설했다. 지적의 대상이 된 현실은 21세기인 지금에도 여전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간단하게 훑어 준 한옥의 역사도 전통을 대하는 우리의 얄팍한 태도를 절감하게 한다. 1980년대에는 북촌지역 한옥 보존을 위한 제도는 생활 편의를 위한 간단한 수리도 불가능할 정도로 무시무시했고 거주자의 일상을 집요하게 옭아맸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제한 규정이 완화되자 여기저기서 ‘중장비들이 한옥을 아작아작 씹어 먹고’ 곳곳에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근래에 한옥의 유행이 시작된 건 2002년에 한옥 관련 정책을 규제 일변도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긍정적 정책으로 전환하고 난 뒤부터다.
저자는 한옥을 둘러싼 문제점을 찬찬히 짚어 내면서도 대략적 배치만 정해지면 각 건물이 어지간히 말로 설명되는 한옥의 시스템적 성격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표준화의 가능성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예컨대 저자는 도산서원의 도산서당처럼 명품 한옥을 키트로 만들어 컨테이너에 담아 판매하면 각자의 대지 조건에 맞게 수정해 깊은 내용이 담긴 좋은 한옥을 손쉽게 가질 수 있다고 제안한다. 아파트처럼 표준화된 보급형 한옥의 가능성 등을 고민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머리말에서 ‘한옥은 실패했다’고 시작한 이 책의 제목이 ‘한옥이 돌아왔다’인 것에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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