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한 친구가 생일이라며 토요일 저녁 한턱내기로 해 만나기로 했는데 다른 친구가 SG워너비 콘서트 표 두 장을 구했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지하철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할아버지가 한 푼을 구걸한다.
친구에게 토요일 저녁 집에 급한 일이 있어 못 간다고 거짓말하고 콘서트에 간다? 조느라 못 본 척 외면한다?
청소년들이 부닥치는 사소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사실 사람을 골치 아프게 하면서 적잖은 철학적 의미까지 담고 있다.
독일에 사는 페르디난트의 누나 피아도 그랬다. 피아는 가장 친한 친구인 안네와 함께 2주간 프랑스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러나 남자 친구 마르크가 6주 후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가서 1년 동안 지내게 될 것이란다. 피아는 마르크와 헤어지기 전까지 한순간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지만 안네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다. 안네에게 돈이 모자라 휴가를 못 가겠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을 해도 안네 누나가 모를 것이므로 전혀 나쁘지 않아요.”(페르디난트)
‘진실의 반대가 아닌 거짓말은 없다. 진실을 사랑할수록 거짓을 미워해야만 한다.’(아우구스티누스)
‘한 번 거짓말한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우화)
피아는 친구에게 휴가를 못 가겠다고 말하려 하지만 이 역시 꺼림칙하다.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결국 신뢰의 문제다. 프랑스행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에 서 있는데 기차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니? 친구 사이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안네는 휴가를 포기할 거지만 약속을 깬 사람이 너라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엄마)
페르디난트는 가까운 동네에 사는 고트프리트 외삼촌을 찾아간다. 논리적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거짓말은 나쁜가요? 망명 신청자를 뒤쫓던 극우파 서너 명이 다가와 그 망명 신청자가 어디로 갔는지 묻는다면?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될 진실을 말할 권리가 없다.’(뱅자맹 콩스탕·프랑스 철학자)
‘진술의 참됨은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을 말함으로써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커다란 해를 입는다 해도 그 의무는 지켜야 한다.’(이마누엘 칸트)
‘내가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 경우 거짓말을 할 권리도 갖는다. 강도와 마주쳤을 경우가 그 예이다.’(아르투르 쇼펜하워)
외삼촌은 “사고를 당해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에게 ‘당신 얼굴은 흉측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말이다. 또 누군가 자신과 관계없는 것을 굳이 알려고 하는데 그에게 말해 줄 수 없다면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조언한다.
‘윤리학 박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독일의 문필가가 쓴 철학동화. 주인공 남매와 부모님, 외삼촌 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예의는 왜 지켜야 하나’ ‘소년과 소녀가 만나 사랑하는 것이 죄일까’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질 수 없나’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한 답을 깨우쳐 준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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