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나 경건하고 올바른 사람인지, 뒤페리에는 살아 있는데도 하늘나라의 둥근 테를 머리 위에 두게 됐다. 문제는 부인. 둥근 테를 너무 싫어하는 것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둥근 테를 없애기로 합의를 보고, 일부러 못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죄를 지으면 둥근 테가 없어지지 않을까 해서다. 교만, 식탐, 분노…. 나쁜 일을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나쁜 마음을 먹게 돼 버린 뒤페리에. 그래도 둥근 테는 여전히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둥근 테를 두른 남자가 어린 창녀를 만나 길에서 수군대는 마지막 장면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한편으로 경건한 척해도 속내는 못된 일을 일삼는 사람들을 꼬집은 모습에 씁쓸해진다.
마르셀 에메(1902∼1967)는 프랑스의 ‘국민작가’로 불린다. 걸작 단편을 많이 남겨 ‘현대 프랑스 단편은 모파상보다 에메에게 더 많이 빚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파리의 포도주’는 1947년 출간된 단편소설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절망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을 위해 지은 8편의 단편이 묶였다. 둥근 테 남자 얘기가 담긴 ‘은총’을 비롯해 모두 독특한 상상력을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들이다.
표제작 ‘파리의 포도주’는 포도주를 좋아하지만 가난해서 먹지 못하는 남자 얘기. 이 남자, 얼마나 포도주가 먹고 싶었던지 살짝 이상해진다. 모든 사람의 머리가 포도주로 보이게 된 것. 급기야 장인어른의 머리를 부지깽이로 ‘따버린다’. 우습고도 서글픈 이야기를 따스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에메의 소설에는 소심하고, 욕심 많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우리 모두의 못된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러면서도 뜨끔하게 그려진다. 읽다 보면 키득거리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이유다. 원제 ‘Le Vin de Paris’.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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