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To: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제자들에게

  • 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From: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 교수

To: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제자들에게

또 한 해가 저물어가네. 매년 그러했듯이 또 한 번 어수선했던 지난해를 다시 뒤돌아보면서 좀 더 뜻있는 삶을 위한 해를 꿈꾸고, 계획해 보는 것도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네.

내가 젊었을 때 그랬고 백발이 된 현재도 아직 그런 것처럼 자네들도 날마다 작고 큰 고민에 시달리고 있으리라고 짐작하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 많은 고민의 밑바닥 중심에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고민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 나는 이 고민의 본질이 도덕적인 것이라 믿네. 도덕적 고민, 즉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선악, 옳고 그름의 가치 기준을 의식하고 그것들을 분별해서 그 분별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데 따른 고민이라는 말일세.

도덕적 문제, 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도덕적 고민과 관련하여 여기서 내가 과거 깊은 감동을 받았고 최근 내가 다시 읽어 본 세 권의 책에 대한 나의 독후감을 자네들과 함께 나누어 보겠네. 어쩌면 이들 책이 자네들의 인생에 대한 고민, 더 정확히는 인간으로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도덕적 고민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일세.

첫째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니체가 만년에 쓴 ‘도덕의 계보’(김성현 옮김·책세상). 그는 지금까지 지배해 온 종교적 세계관과 도덕관 가치관이 사실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약자들이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강자에게 맺힌 원한을 복수하기 위해 꾸며낸 지적 장치에 불과하다면서 종교로 뒷받침된 선악이라는 도덕적 규범에서 해방돼 자유로운 주체인 실존적 ‘초인’으로서 당당하게 살라 하네. 그러나 니체의 가르침은 우리의 도덕적 고민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네. 좋건 나쁘건 인간은 본시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일세. 중요한 것은 도덕적 규범의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도덕적 가치 가운데에서 과연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가장 옳은지를, 가장 선한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비판적으로 생각할수록 그러한 것을 바르게 가려낼 잣대로서의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네.

이런 점에서 내가 오래전부터 수차례 감동적으로 읽은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천병희 옮김·문예출판사)를 두 번째 책으로 골라보네. 특히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20세기 프랑스의 작가 장 아누이가 희곡으로 새롭게 각색한 동명의 작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 이 작품에서는 행복이라는 공리적 가치와 도덕성이라는 이념적 가치, 전자를 대변하는 왕 크레온과 후자를 상징하는 그의 조카딸 안티고네 사이에 존재하는 풀 수 없는 비극적 갈등의 극단적 예를 보네. 소포클레스나 아누이의 ‘안티고네’가 위대한 작품인 것은 그것이 도덕적 가치 선택의 문제를 풀어줘서가 아니라 그 문제의 어려움을 명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부각시켜 준 데 있네.

도덕적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수많은 철학적 종교적 이론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언제 어디서 어느 경우이고 만족스럽게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은 없네. 나는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라이너 에를링어의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박인수 옮김·비룡소)를 권하고 싶네. 뜻밖에 만난 아주 유익한 책이었네. 도덕적 삶이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삶’이며, 책임지는 삶이 “정말 힘들지만 그런 게 바로 자유다”라는 이 책의 메시지는 극히 의미 있는 것이라 믿네. 나는 자네들이 주어진 삶, 주어진 가치관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도덕적 고민을 통해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더욱 도전하길 바라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