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인 동시에 ‘한국경제 비극의 해’로 기억되는 1997년 외환위기 10주년이 되는 해다.
민주화 원년에서 20년, 세계화 원년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1987년 체제’를 배태했던 핵심 담론들은 해체되고 있다. 진보진영이 쥐었던 민족 민주의 헤게모니가 보수진영의 역습 앞에 흔들리고, 진보 보수 양 진영 내부의 분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세계화의 담론까지 맞물리면서 21세기 신(新)이념 지형도가 펼쳐지고 있다. ‘87 체제’를 대체하는 지식세계의 흐름을 정리해 본다.》
‘87년 체제’는 1980년대 지식사회의 키워드였던 민주, 민족, 노동 담론이 구축한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담론은 독재와 반독재, 통일과 반통일, 자본과 노동이라는 선명한 이분법적 구도를 통해 각광받을 수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선명했던 구도가 무너지면서 그 자리에 좀 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 박정희 시대 재평가
독재와 반독재 담론이 무너진 대표적 사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에서 확인된다. 1980, 90년대 박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의 시발점이자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배태한 원흉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꽃피기 위해 일정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발전주의 이론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근접한 한국의 경험적 사례가 접목되면서 개발독재를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한 ‘징검다리’ 내지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학자가 늘어났다. 유신독재와 산업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한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의 저자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반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구조조정’ 등 일련의 저서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국가 주도 발전주의 전략의 우수성에 주목하고 이를 군부독재와 결부하는 것은 민주화 세력의 오판이라고 비판한다.
박정희 재평가를 둘러싼 현실 정치의 파장과 별도로 학계의 박정희 연구에서는 상당부분 탈정치화가 진행됐다. 기존의 연구성과도 속속 뒤집히고 있다. 2005년부터 박정희 시대 재평가를 주제로 거의 매달 학술대회를 개최해온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지난해 1차 연도 연구 성과를 모아 출간한 ‘박정희 시대와 한국현대사’를 봐도 그렇다. 이 책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현재의 우파 담론이 박정희 시대의 비판담론을 닮은 반면, 그를 비판하는 현재의 좌파 담론은 박 전 대통령의 사고를 닮았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했다.
○ 탈민족주의와 탈국가주의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련을 견뎌 내며 광복과 건국, 근대화와 통일이라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민족주의 담론도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민족이 자연스러운 혈연·문화 공동체가 아니라 근대에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과 에릭 홉스봄 같은 서구 학자들의 이론을 수용하는 학자층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족이 식민시대 국가권력의 공백을 채워 주는 ‘신화’였다가 광복 이후에는 정치권력을 위한 효과적 대중동원 수단으로서 ‘국가 종교’가 됐다고 비판한다.
2000년대 들어 비로소 목소리가 뚜렷해진 이들 탈민족주의 그룹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민족을 역사의 주체로 상정하고 민족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해 온 일군의 좌파민족주의 학자를 민족의 주술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하는 그룹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위험성을 동시에 비판하는 그룹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서울대 이영훈, 박지향 교수라면 후자는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성균관대 윤해동, 천정환 교수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대중독재론’으로 통합하고 있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도 후자에 속한다. 박지향, 이영훈 교수가 민족(nation) 개념에서 반(反)지성과 반(反)문명의 감수성을 읽어 낸다면 임지현, 윤해동 교수는 민족국가(nation-state) 개념에서 근대적 폭력과 배제의 논리를 찾아낸다.
과거 민족주의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했던 좌파이론가 그룹에서도 탈민족의 경향은 뚜렷해지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좌파 민족주의 정치학’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던 최장집 고려대 교수마저 “민족주의는 일정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념이고 운동이지만, 지금은 유효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렸다.
○ 통일지상론서 평화번영론-선진화우선론으로
탈민족주의는 민족을 중심에 둔 통일담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이후 민족통일담론을 주도했던 좌파 진영은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논리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는 평화를 우선시하는 평화번영론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햇볕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으로 호칭이 바뀐 점도 같은 맥락이다.
좌파 진영 일각에선 통일지상론과 평화번영론을 1980년대 민족해방(NL)계열과 민중민주(PD)계열의 ‘21세기 버전’으로 바라본다. 실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를 ‘자주파’와 ‘수평파’로 규정하면서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주장은 얼핏 노 대통령 집권 이후 위기에 빠진 좌파진영의 변화나 성찰로 들리지만 좌파 담론 내 헤게모니 투쟁의 연장선에서 볼 필요가 있다. 수평파를 대표하는 최장집 교수가 “‘민족주의-통일’을 다시 추구할 게 아니라, ‘민주주의-공존’으로 가야 한다”며 통일담론의 맹목성을 비판하고 나선 것에 대한 자주파의 대항담론적 성격이 짙다.
통일담론에 대한 가장 격렬한 비판은 우파 선진화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대 안병직, 박세일 교수는 남북통일보다는 남한사회의 선진화를 우선시한다. 특히 안 교수는 “6·15공동선언이 남한사회 선진화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며 6·15공동선언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 노동운동 전투성에서 합리성으로
노동운동은 1987년 체제 출범 이후 한국사회를 이끄는 가장 역동적 담론의 하나였다.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가 정치적 민주화의 상징이었다면 노조운동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지표였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자랑했던 한국의 노조운동은 2000년대 이후 ‘집단이기주의의 상징’으로 전락하면서 매서운 비판에 직면했다.
그 시발점은 2004년 11월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노동문제토론회였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한국 노동운동이 위기를 넘어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 있다”며 조직 이기주의에 젖은 노동운동의 성찰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장집 교수는 2005년 5월 “오늘날 노동운동은 부도덕이나 폭력의 상징처럼 묘사되고 일반인에게는 성장정책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며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을 수용할 수 있는 온건 현실주의 노선이 돼야 한다”며 노동운동의 자기변화를 촉구했다.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성찰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 전 대통령비서관이 지난해 6월 전교조를 향해 “교사의 이익만 대변해 오히려 교육 발전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라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지난해 12월 사회적 연대의식을 상실한 채 내부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노동계를 향해 “돌팔매를 맞더라도 노동계는 자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한승 한국노동교육원장은 이를 “한국노동운동을 지배했던 ‘정치적 조합주의’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인해 약화되고 노동운동의 에너지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넘어가는 이중의 과도기적 상황 아래서 새로운 자기정체성 모색”으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87년 담론의 해체 내지 재구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호기(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에서 1987년이 상징하는 ‘민주화의 시간’과 1997년이 상징하는 ‘세계화의 시간’이 공존했지만 점차 탈냉전, 탈민족·초국가, 개인주의에 기초한 세계화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설명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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