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엑세쿠탄스’출간 이문열“왼쪽으로만 엎어지란 말인가”

  • 입력 2007년 1월 3일 03시 05분


소설가 이문열(59·사진) 씨가 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장편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민음사) 출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40여 명의 취재진과 TV 카메라 20여 대가 몰려 이 씨의 ‘정치적’ 무게를 짐작하게 했다. 이 씨도 “1990년대 후반 이후 기자간담회를 했지만 이렇게 많은 기자가 모이기는 처음”이라며 놀라워 했다.

‘호모 엑세쿠탄스’(처형자로서의 인간)는 지난해 계간 ‘세계의 문학’ 연재 당시 햇볕정책과 386 지식인이 주축이 된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소설. 이 씨는 이번에 전 3권으로 펴내면서 일부 자구를 수정했을 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다가 소설 출간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29일 귀국했다.

발간 전부터 화제가 된 ‘호모 엑세쿠탄스’와 관련해 이 씨에게 열띤 질문이 이어졌다. 이 씨가 이대로는 세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종말론적 인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밝히자 “한국 사회가 종말론적인가”라는 물음이 곧장 날아왔다.

이 씨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1980년대부터 그런 논의가 있었고 대중에게 상당 부분 동의를 얻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는 “통일 논의만 해도 이전에는 추상적인 문제였지만 지금은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 안 되는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는 절박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는가”라며 “그런 인식의 근원은 소수인데도 부당하게 과장되고 확대됐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이 무엇에 동의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설의 일부 대목이 현실 정치를 비판했다는 논란에 대해 “그 부분은 전체 원고지 2800장 중 200장이 채 안 되는 분량으로 삽화나 배경 수준”이라며 “예상은 했으나 작품의 중요한 한 틀이어서 빼 버릴 수 없었다. 다른 중요한 부분은 버려두고 그 부분에 대해서만 공방을 벌이니 불만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책의 서문을 직접 읽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정치적 견해를 용서 못할 반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욕부터 하고 덤비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아무리 봐도 문학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못한 비방이요, 염치없고 상식도 갖추지 못한 정치적 시비로만 들린다. 막말로, 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져야 하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며 자빠져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다.”(서문 일부)

소설에서 우파가 세상을 개탄한 이야기는 많지만 좌파가 한탄한 부분은 거의 없는 대목에 대해서도 이 씨는 “그런 부분은 지금까지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씨는 자신이 보수 우파로 불리는 데 대해 “남들이 그렇게 주장하기도 했고 나도 감수하기도 했다”며 “1980년대에는 그렇게 불리는 데 반발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 진보 좌파만 하겠다고 하면 골치 아프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씨는 2월 중순 출국해 미국 보스턴에서 하버드대 체류작가로 6개월∼2년 머물 예정이다. 올해 말 대선 때 귀국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없는 게 좋지 않겠느냐”면서도 곧 “한국에서 투표할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지난해 12월 말 사전주문을 받았으며 4만 부가 나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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