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믿어요, 사이버 입소문의 힘을!
11일 개봉하는 영화 ‘허브’의 홍보 전략도 ‘입소문 마케팅’이다. 개봉 3주 전부터 시사회를 펼쳐 온 이 영화는 시사 관객 목표치만 10만 명을 잡았다. 제작사인 KM컬쳐의 심영 마케팅부 이사는 “개봉 전 영화에 대한 좋은 입소문을 최대한 끌어내 기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6일에는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70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연다.
영화계에서 ‘입소문의 힘’이 알려지면서 최근 시사회장에서 무대 인사를 하는 배우들은 “좋은 댓글이나 호평을 많이 남겨 주세요”라는 인사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영화에 자신이 없을 경우 제작사들은 시사회 일정을 줄이거나 아예 취소하는 등 악평을 막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최근에는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벤트도 등장했다. 영화를 보고 좋은 평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주는 이벤트들이다. 11일 개봉하는 외화 ‘데자부’의 경우 한 포털사이트와 함께 ‘영화가 기대되는 이유’를 남겨 달라는 이벤트를 했다. 같은 날 개봉하는 ‘묵공’은 ‘예고편 속 가장 인상 깊은 명장면 올리기’를 진행 중이다.
○ 사이버 입소문은 인터넷 알바?
‘사이버 입소문’과 관련해 영화계 주변에서는 속칭 ‘알바(아르바이트)’설도 꾸준히 제기된다. 직장인 정현철(28) 씨는 영화 포털사이트에서 한 누리꾼이 남긴 영화평점을 보고 ‘알바’가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조폭 소재의 한국영화에는 10점 만점을 준 반면 ‘네티비티 스토리’, ‘대통령의 죽음’ 등에는 “이런 영화 이제 그만”이라는 악평과 함께 최하점인 1점을 준 것. 모두 한날한시 한꺼번에 올라온 평점이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사이버 입소문’의 실체에 대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최근 2, 3년간 한국 영화 제작편수는 크게 늘었지만 흥행작은 몇 편 나오지 않았기에 영화 마케터들은 개봉 전 여론 몰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연 사이버 입소문을 전문적으로 퍼뜨리는 알바생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영화마케팅 관계자의 대답은 ‘있었다’라는 것. 한 영화계 인사는 “영화 개봉 초반 분위기를 띄워야 하기 때문에 ‘이 영화 된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사 측은 알바생의 실체에 대해 △특정 영화에 후한 점수를, 경쟁작엔 최하 점수를 한날한시 한꺼번에 준 경우 △개봉 전 영화도 마치 본 것처럼 좋다는 평을 다량 남긴 경우 △같은 영화인데도 사이트 간의 평점 차가 클 경우 등을 예로 들었다. 하루 평균 2500명의 누리꾼이 영화평점을 남기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영화 코너에서는 2006년 1월부터 같은 주민등록번호로 여러 개 아이디를 사용하거나 최하점과 최고점을 동시에 자주 남기는 누리꾼 등에 한해 영화평을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알바생의 존재를 인정하는 조치인 셈이다.
그러나 영화계 일각에서는 알바생의 존재와 효과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한다. 영화 홍보사 에이엠시네마 명수미 실장은 “알바생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옹호성 평이 나올 경우 이에 대한 역효과가 크다”며 “이미 포털사이트나 영화전문 사이트 등에서 활동하는 누리꾼만 몇백만 명인데 고작 100∼200명으로 여론을 바꾼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문제는 누리꾼들 스스로 점차 ‘영화평점’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는 “알바설, 여론조작설 등 누리꾼들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린 결과 요즘엔 영화평점 코너는 마치 ‘한번 들러 아무 얘기나 쓰고 가는 놀이터’같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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