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가는 돈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눈을 벌겋게 뒤집어 까는 흉악한 거리니까. 이 거리의 사람들은 독사처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독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람이 죽어 넘어진다 해도 자기 일이 아니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주인공 우룽도 “솔직히 나도 남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 먹고사는 문제가 모든 가치를 앞섰던 중국은 그래서 비정했다.
쑤퉁(蘇童·44)은 ‘허삼관 매혈기’의 위화(余華)와 함께 중국 문단을 이끄는 대표 작가로 꼽힌다. 그의 소설 ‘처첩성군’이 영화 ‘홍등’으로 옮겨졌으며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홍분’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작품이 영화화돼 대중적으로도 사랑을 받아 왔다.
‘쌀’은 쑤퉁에게 ‘세계적인 작가’라는 명성을 안겨 준 소설이다. 이 책이 미국에 소개됐을 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소설’(뉴욕타임스), ‘대단하다. 숨이 막힐 것만 같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은 중국 중소 도시의 ‘대홍기 쌀집’을 배경으로, 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홍수가 난 시골 고향을 떠나와 도시의 쌀집 일꾼으로 취직한 우룽. 우룽은 하루에 세 끼를 먹기만 하면 바랄 게 없는 사내지만, 그가 터 잡은 도시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열다섯 살에 순결과 모피 코트를 맞바꾼 쌀집 큰딸, 돈만 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깡패, 유산을 받기 위해 시아버지가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며느리….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는 악한 도시에서 순박한 우룽이 타락하기란 순식간이다.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가진 쌀집 큰딸과 얼결에 결혼하고 장인의 혹독한 미움을 받으면서, 우룽은 빠르게 고자질과 탐욕, 증오와 복수를 배운다.
‘그래도 선한 본성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작가는 무참하게 무너뜨린다. 우룽은 주인이 죽은 뒤 쌀집을 차지하지만, 욕망은 풍선처럼 부풀기만 한다. 멀쩡한 이를 빼고 금으로 만든 틀니를 해 넣으며, 밤마다 기녀와 오입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이가 있으면 아랫사람을 시켜 죽여 버린다.
우룽의 악의 근원은 물론 타락한 도시다. 우룽의 아들이 죽어 가는 아버지의 금니를 빼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작가는 악이 근절되기는커녕 대물림됨을 보여 준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도시가 낳은 폭력과 불륜과 음모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 ‘米’(1991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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